설화 안에 머물렀던 백제 불교의 베일이 벗겨졌다. 익산 미륵사의 창건 주체는 그동안 알려졌던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무왕의 다른 왕후’로 확인됐다.
미륵사는 무왕과 선화공주가 세웠다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었다. 미륵사의 창건 연대도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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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터 석탑서 나온 보물들 전북 익산의 국보 제11호 미륵사터 석탑에서 금제사리호와 금제 사리봉안기를 비롯해 500점에 이르는 사리장엄이 출토될 당시의 모습. 미륵사터 석탑을 해체 보수하고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14일 1층 중심 기둥의 윗면에서 이 사리공을 찾아냈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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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터 석탑서 나온 보물들
전북 익산의 국보 제11호 미륵사터 석탑에서 금제사리호와 금제 사리봉안기를 비롯해 500점에 이르는 사리장엄이 출토될 당시의 모습. 미륵사터 석탑을 해체 보수하고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14일 1층 중심 기둥의 윗면에서 이 사리공을 찾아냈다.
문화재청 제공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일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터 석탑 해체 보수 현장에서 “지난 14일 석탑 1층 심주(心柱) 윗면 중앙에서 사리공(舍利孔)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백제 무왕의 왕후가 조성한 금제 사리호(舍利壺)와 금제 사리봉안기(舍利奉安記) 등 최상위 국보급 유물 등 500여점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김봉건 문화재연구소장은 “사리봉안기를 해독한 결과 정확한 창건 연대는 무왕 재위 시대(600~641년)의 기해년(己亥年)인 서기 639년으로 확인됐고, 창건 주체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최고 관직인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왕비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사리호는 높이 13㎝에 너비 7.7㎝로 거의 훼손되지 않은 완벽한 형태였고, 옥으로 만들어진 내함에 사리가 담겨 있다. 사리호 표면에는 연꽃잎 무늬와 연주문 등이 세밀하게 새겨져 있어 백제 금속공예의 정교함과 우수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현장에서 “백제 문화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굉장히 귀중한 자료로 국보 중의 국보”라면서 “1400여년의 세월 동안 조금도 훼손되지 않고 완벽하게 발견된 것은 고고학적 쾌거이자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익산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09-01-2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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