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의 캔버스 세상] 영원에서 찰나를 되살려내다

[이주헌의 캔버스 세상] 영원에서 찰나를 되살려내다

입력 2008-11-04 00:00
수정 2008-11-04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인간의 가장 큰 욕망 가운데 하나는 시간을 붙들어 매는 것이다. 인간은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늙기를 원하지 않는다. 젊은 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단단한 돌과 청동으로 젊고 아름다운 육체를 만들어 조각이라 부르며 감상하는 관습이 생겨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조각가를 “계속 살아있게끔 하는 자”로 불렀다고 하니, 조각에 깃든 우리의 불멸을 향한 욕구를 짐작할 수 있다.

이미지 확대
고명근은 그 조각을 다시 필멸의 대상으로 불러내는 작업을 하는 작가다. 김종영 미술관이 매년 두 사람씩 선별해 선보이는 ‘오늘의 작가’전 대상 작가로 초대된 그는 이번 전시(12월4일까지)에 신체와 빌딩,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출품했다.

신체를 주제로 한 그의 작품은 대부분 서양 고전 조각을 소재로 한 것이다. 구미 유수의 미술관에서 누드 조각들을 촬영해 이를 투명한 필름에 인화하고 그것들로 입방체 등 기하학꼴의 모뉴멘트를 만들었다. 필름에 맺힌 이미지는 왠지 찰나와 순간의 산물처럼 느껴진다. 스냅 사진이 주는 느낌은 아무래도 영원보다 찰나에 가깝다. 피사체가 단단한 조각상이라도 그렇다. 게다가 투명한 필름 위에 상이 얹히고, 그게 여러 면에 걸쳐 존재하다 보니 서로 겹쳐 보이는 게 마치 환영 혹은 허상 같다. 단단하고 묵직한 조각이 어쩌면 이렇게 구름 같은, 금세 사라질 것 같은 이미지로 변할 수 있을까. 영원으로부터 찰나를 되살려낸 작가의 솜씨가 경이롭다.

고명근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그의 앵글이 포착해낸 인체들이 얼마나 감각적이고 관능적인지 돌이 아니라 실제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피부 질감이나 몸 라인이 현실에 존재하는 미인의 그것으로 성큼 다가온다. 이 관능성은 원래 조각을 만든 이들조차 그 앞에 서면 놀랄 만큼 생생하다. 이런 탁월한 관능의 효과는 그의 작품에 다시 이슬 같은 유한성을 부여한다. 꽃이 아름다울수록 더 찰나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그의 이미지는 너무 관능적이어서 곧 사라지고 말 것 같다.

고명근이 조각처럼 단단한 인공물에서 영고성쇠의 유한성을 본 것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낡은 건축물을 촬영할 때부터 그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 깊이 사유하기 시작했다. 조각을 촬영하기 전 그는 퇴락한 건축물을 촬영해 그것으로 입방체를 만들거나 대칭 형태의 작품을 제작했다. 이번 전시에 함께 출품된 그 작품들로부터 무언가를 세워 영원불멸하고자 하는 인간과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자연의 끝없는 갈등을 엿볼 수 있다. 작가가 영원을 추구하는 조각과 순간을 낚아채는 사진을 함께 전공한 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긴장의 묘사는 태생적으로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미술평론가)
2008-11-04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불장인 국내증시에서 여러분의 투자성적은 어떤가요?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며 5000선에 바짝 다가섰다. 연초 이후 상승률은 15% 안팎으로,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가파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 수익률은 외국인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 여러분의 수익률은 어떤가요?
1. 수익을 봤다.
2. 손해를 봤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