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도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더니…

그리도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더니…

입력 2008-08-01 00:00
수정 2008-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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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청준형을 영결하며

이형, 끝내 먼저 떠나고 말았구려.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소설’이라는 짐 가벼이 내려놓고 떠났구려. 투병 중에 낸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는 소설 제목의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단 말입니까. 제발 이승의 모든 고통과 기억 다 잊어버리고 훌훌 떠나소서.

나는 이형에게서 소설가의 위대한 정신을 보아왔습니다. 속세의 온갖 유혹 다 뿌리치고 오로지 소설 하나만을 붙들고 사는 이형이 늘 부럽고 큰 바위 얼굴처럼 자랑스러웠답니다. 우리는 토끼 띠 동갑에 광주의 같은 하늘 아래서, 무등산을 보며 문학 청년기를 함께 보냈지요. 나는 광고에서, 이형은 일고에서 문학의 꿈을 키웠지요. 어린 나이에 홀로 낯설기만 한 광주에 와,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문학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던가요. 그 후, 우리는 광주에서, 서울에서 수없이 만났지만 한번도 내게 거드름을 피우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지요. 언제 만나도 황토같이 끈끈한 전라도 정이 넘쳤지요. 우리가 처음 만나 촌놈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중학교에 다니면서 털메기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하자, 이형은 광주 서중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기차를 봤다고 했지요.

94년이었던가, 노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최하림 시인과 장흥 회진까지 문상을 갔었지요. 뒤뜰에 열린 노란 유자를 하나 따주었지요. 바다와 접한 조그마한 마을의 낡고 초라한 시골집을 보면서, 나는 이형이 유년시절 얼마나 고달프게 자랐을까 상상이 되었습니다. 그 때 이형이 내 문학의 뿌리는 바로 고향과 어머니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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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문순태  연합뉴스
소설가 문순태
연합뉴스
이형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전라도적인 작가요 전라도를 사랑하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한의 소리인 판소리와 남도창, 문기(文氣)가 물씬 묻어나는 남도 문인화 등 전라도 문화와 정서를 유별나게 좋아했지요. 형의 여러 작품 속에 점액질의 한과 구성진 남도 가락이 배어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이 아닌지요.

언젠가 형이 내게 “소설은 한의 씻김굿과 같은 것”이라고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작가는 역사보다는 인간 존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도 했던 것 같습니다. 형은 누구 앞에서나 겸허하면서도 당당했습니다.1993년 영화 ‘서편제’를 통해 전라도의 멋과 신명,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전국에 널리 알리게 되었을 때, 광주의 기관장들이 이형을 일류 요릿집에 초청해 환영연을 베푼 적이 있었지요. 도지사·시장·법원장·검찰청장·교육감·정보부 지부장·신문사 사장들이 다 모였었지요. 그 때 나도 말석에 끼었었지요. 그 자리에서 어떤 기관장이 이형 앞에 무릎을 꿇고 존경을 표시하며 술을 따르자, 이형이 같이 무릎을 꿇고 술잔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이형의 그 의연하면서도 겸허하고 당당한 모습이 오래토록 잊혀지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이형은 더 큰 소설가로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부디 편안히 가소서.

문순태 소설가
2008-08-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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