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공장’ 작품 200여점 선뵌다

‘미술공장’ 작품 200여점 선뵌다

윤창수 기자
입력 2007-03-19 00:00
수정 2007-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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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이 지금 무덤에서 나온다면 요즘 사람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워홀은 전화기에 집착했고 항상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다녔던 만큼 휴대전화기로 사진을 찍어대는 현대인들이 전혀 낯설지 않을 겁니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마련한 ‘앤디 워홀 팩토리’전(6월10일까지)에 맞춰 한국을 찾은 토머스 소콜로프스키(47) 미국 앤디 워홀 미술관 관장은 기자들과 만나 “캠벨 수프와 콜라병의 작가로만 워홀을 기억하는 것은 섭섭한 일”이라며 “워홀을 단순한 팝아티스트로만 이해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올해는 앤디 워홀이 사망한 지 20주년 되는 해. 리움은 이번 회고전을 위해 앤디 워홀의 고향인 피츠버그에 있는 앤디 워홀 미술관에서 실크스크린, 조각, 사진, 영화, 드로잉 등 200여점 작품을 대여 형식으로 들여왔다.

평소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던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스튜디오가 아니라 ‘팩토리(factory)’라고 불렀다. 예술가의 작업실을 소비자들의 욕구를 채워줄 물건을 만들어내는 공장으로, 자신을 무감각하게 작품을 찍어내는 공장의 생산기계로 간주한 것이다. 워홀은 자신의 ‘미술공장’에서 어떤 제품들을 만들어냈을까.

워홀 공장의 생산라인은 리움 지하 2층 전시실에서부터 시작된다. 워홀의 황소머리 실크스크린을 벽지처럼 바른 입구를 통과하면 오른쪽 벽면에는 캠벨 수프 통조림을 실크스크린으로 떠낸 연작들이, 정면에는 마릴린 먼로의 얼굴을 다양한 색상으로 변주해 찍어낸 연작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난한 폴란드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워홀은 무도병과 백반증을 앓는 등 콤플렉스가 심했지만 늘 “유명해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마릴린 먼로, 재클린 케네디, 실베스터 스탤론, 마오쩌둥 등 유명인의 초상작업으로 스타 예술가의 꿈을 이룬 워홀은 과연 행복했을까. 리움의 지하 1층 블랙박스 전시장은 워홀의 ‘자화상’등 예술가면서 동시에 스타가 되고자 했던 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로 가득하다. 일반 7000원, 초·중·고생 4000원.(02)2014-6555.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팝아트(pop art)란

1950년대 영국에서 시작돼 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대중예술’의 한 갈래.1954년 영국의 미술평론가 로런스 알로웨이가 처음 사용한 말로, 대중적인 이미지를 순수미술 안에서 활용하고자 하는 미술 경향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작가로 앤디 워홀을 비롯해 로이 리히텐슈타인, 제임스 로젠퀴스트, 클래스 올덴버그, 로버트 인디애나 등이 꼽힌다.
2007-03-1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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