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인문학… 그러나 희망은 있다

벼랑끝 인문학… 그러나 희망은 있다

조태성 기자
입력 2006-09-26 00:00
수정 2006-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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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발전을 위해 지금 규모를 축소하려는 XX학과에 자기 자식을 입학시켰거나 입학시키고 싶은 교수는 손들어 보라.” (아무도 손들지 않자) “그런데 왜 남의 자식들은 많이 데리고 오라는 거냐.” 대학 구조조정 대상에 인문학과 이름이 거론되고 인문학과 교수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했던 교수가 반대하는 교수들을 설득한 방식이다. 씁쓸한 소극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위기의식 때문에 1996년 11월 전국 21개 국·공립대 인문대학장들이 제주에 모여 ‘인문학 제주선언’을 내놨었다.10년이 지난 지금,26일 이화여대에서 또다시 전국인문대학장단 성명서가 채택된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이 25∼30일 1주일 동안 진행키로 한 ‘인문주간’ 행사의 일환이다.

10년 만에 다시 인문학 성명서가 나온다는 게 반갑지만은 않다. 상황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아 안쓰러워서이기도 하고, 그동안 안 죽고 살아있었던 걸 보면 위기 운운하는 게 거짓말 같기도 하다.26∼27일 이화여대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진지하게 다루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인문학 세분화가 인문정신 쇠퇴 불러

미리 배포된 발제문에 따르면 윤재민 고려대 교수는 ‘인문학의 위기’보다 “인문정신의 위기”라고 표현했다.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에 비해 지원이 적다고 징징대는 게 인문학의 위기라면 웃기는 얘기라는 것. 그보다 지나치게 서구적인 인문학 세분화가 결국 인문정신까지 쇠퇴시켰다고 봤다. 그는 “학문 그 자체였던 인문학에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빠져나가면서 인간을 대상화하고 계량화하기 시작한 것, 이것이 인문 정신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박성창 서울대 교수는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인문학과 편제가 서구 인문학보다 더 세세하고도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틀을 빨리 깨야 한다면서 박 교수는 서울대·한양대·건국대에서 이뤄지고 있는 학제간 수업이 빨리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상수 서강대 교수는 인문학의 부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미국 기업들의 경우 사원채용 때, 특히 최첨단 분야일수록 인문학 전공자를 선호한다. 우리도 비슷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읽기 쓰기 말하기’를 가르쳐 달라는 것인데 이는 다름 아닌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뜻한다.

임 교수는 이 지점에서 “구조조정에 맞서 소극적인 방어성 주장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이런 부분에 인문학이 쓰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에 맞춰 교육내용도 혁신해야 한다.

인문주간의 역설?

학술진흥재단은 인문주간 동안 다양한 행사를 벌인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연구공간 ‘수유+너머’, 철학아카데미, 디지털문화아카데미 등이 참여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인문주간의 역설이 드러난다는 지적도 있다.

수도권 소재 한 대학 교수는 “이들 가운데 몇몇 단체는 학제적 연구 등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제도권 인문학에서 사실상 내몰린 학자들이 만든 것”이라면서 “어찌 보면 인문학 위기의 이유가 정말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풍경”이라고 꼬집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06-09-2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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