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일상사에 정작 일상은 없다? 무슨 철지난 말장난인가 싶은데, 최근 부는 일상사 열풍을 이송순 박사(근현대사·고려대 강사)는 이처럼 꼬집었다. 일상사란 최근 탈근대론과 맞물려 각광받고 있는 역사 접근법. 특정 인물이나 제도·구조의 변동이 아닌 보통사람들의 삶으로 역사를 보자는 것이다.
●민중·대중의 삶으로 역사보기에는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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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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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순 박사
이 박사도 일상사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말로는 역사를 이끄는 것은 대중·민중이라면서 실제 역사 연구는 그렇게 이뤄져오지 않았죠. 민중·대중을 도리어 이용해먹은 게 아니냐는 비판에서 일상사가 나옵니다. 역사를 이끌었다는 대중·민중이 과연 어떻게 살았느냐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는 대단히 매력적인 작업입니다.” 그럼에도 일상사도 결국 개인의 삶을 구조·제도와 연결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단편적인 사실의 나열에 그친다. 문제는 이런 연구성과가 없다는데 있다. 한마디로 전체적인 시대상을 보지 못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만 찾는,‘소재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식민시기 일상사 연구를 들었다. 식민시기에 ‘착취 VS 독립운동’만 있었던 게 아니라 근대성도 나타났다고 주장한다.“그런 연구에서 참조하는 게 당대의 신문·잡지입니다. 그러나 그 시절 조선에서 신문·잡지를 만들고, 구독해보는 사람이 어떤 계층일지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들이 당시 조선사회의 표준일까요.” 당시 신문·잡지를 만들고 이를 사보던 사람들이 그 시기 ‘일상’이냐는 질문이다. 압구정동 오렌지족이 20대 대한민국 남성을 대표할 수 있느냐는 반문이기도 하다.“1940년대 전 시기에 일제가 유언비어를 단속한 기록이 있는 데요, 여기 실린 유언비어라는 게 정말 믿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만큼 보통사람들에게 일제통치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겁니다.”
●대안 없이 기존 역사연구법 대체할지 의문
궁극적으로 일상사가 기존의 역사연구방법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일상사는 탈근대이론과 함께 등장했습니다. 근대를 비판할 뿐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탈근대론의 문제가 그대로 일상사에 적용됩니다. 기존 역사접근법을 비판한 그 다음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실제 일상사 연구의 본고장인 독일에서는 1960년대 ‘역사작업장’운동으로 일상사 붐이 일었다. 랑케의 실증주의 전통이 강한 독일이었기에 그 반작용으로 발생했던 것. 이 운동은 국문학·사회학 중심의 우리나라와 달리 역사학자들 중심으로 진중하게 추진됐음에도, 독일통일 같은 초대형 이슈를 만나면서 사실상 와해됐다.
●근대비판적인 연구영역 더 개발해야
이 박사는 그런 의미에서 일상사는 근대비판적인 연구영역을 더 개발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젠더, 성적 소수자, 장애인, 아동 등 소외받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연구와 근대·자본주의·민주주의의 허구성을 폭로할 수 있는 연구 등이 이뤄져야 진정한 의미에서 일상사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파문에서 보듯 탈근대에서 출발한 일상사 연구가 거꾸로 근대지상주의 논리에 포섭당하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조금 더 세심한 접근이 이뤄지지 않는다면,‘이제 일상사 연구가 대안’이라는 주장은 성급한 오류일 수밖에 없다는 게 이 박사의 결론이다.
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06-09-1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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