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섭 시인 ‘분홍빛’ 곽효환 시인 ‘인디오’
곽효환은 4년 전 ‘시평’ 겨울호에 ‘수락산’등 5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하지만 시인의 꿈은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인디오 여인’(민음사)은 지난 10년간 그가 스쳐지나온 사람과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서사와 서정의 기록이다.“3월에 큰 눈이 내린 후/황새 한무리 길을 잃었다/검고 흰 날개를 펴고/철원평야를 건너 순담계곡을 배회하다/날개를 접었다/바이칼호가 아득하다//나도 어딘가에 길을 잃고 버려지고 싶다/아득히 잊혀지고 싶다”(‘길을 잃다’전문)처럼 시집에는 길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기록된 행로는 국경을 넘어 러시아와 프랑스, 쿠바, 멕시코로 뻗어나간다. 그곳에서 시인은 사람을 만나고, 역사와 대면한다. 가령 아스텍 신전에서 만난 “군옥수수를 파는 인디오 여인의 그늘진 얼굴”에서 시인은 굴곡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군옥수수를 파는 인디오 여인’중)을 본다. 평론가 유종호는 “시인 곽효환은 눈과 귀를 활짝 열어놓고 주목하며 경청하며 적어두는 젊은 나그네”라고 평했다.
무심한 듯 풀어놓는 개인사의 풍경도 예사롭지 않다.“나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아버지의 자살에 관하여”(‘자살에 관하여’중)라거나 “사업 실패로 추락한 아버지의 종착지”였던 “사당동 산 17번지”(‘물 길러 가는 길’)등은 시인이 겪은 가족사의 비극과 내면의 상처를 짐작케 한다.
신기섭은 지난해 12월 쏟아지는 폭설속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떴다.
경북 문경 출신으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나와 200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지 채 1년도 안돼 사라진 꽃다운 시인의 죽음을 많은 문인들이 안타까워했다.
‘분홍빛 흐느낌’은 등단 후 여러 문예지에 발표한 20여편과 평소 시집 출간을 염두에 두고 시인 스스로 정리해둔 미발표작 등 53편을 묶었다.
평론가 신수정 등 시인의 은사와 서울예대 문우들이 발벗고 나섰다.
생전의 시인은 늘 웃음 띤 얼굴이었으나 시들은 대부분 어둡고 무겁고 쓸쓸하다. 죽음에 관한 시들이 유독 많은 것도 예사로이 넘겨지지 않는다.
“오래 자다 일어난 것 같은데 어둡다 문득 잠결에 친구의 전화를 받은 기억, 그러나 그 친구 이미 오래 전 스스로 목을 매달고 죽은 기억”(‘봄눈’중)이나 “늙게 살면 빨리 죽는 거야/희망을 말하면 빨리 죽는 거야”(‘문학소년’중)같은 시구에서는 어느새 시인의 무의식을 짓누르는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엄마를 대신해 시인을 돌봤던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눈물겹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분홍색 외투를 태우며 시인은 “이제는 추억이 된 몸속의 흐느낌들이/검은 하늘 가득 분홍색을 죽죽 칠해나간다”(‘분홍색 흐느낌’중)고 노래한다. 시인 문태준은 “고통의 품에 오래 안겨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대긍정이 그의 시에는 있다.”고 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6-06-0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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