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는 고암 이응노(1904∼1989) 예술의 핵심이자 혼이다. 고암의 회화 전반에서 느껴지는 분방하고 대범한 필력의 근원은 바로 그의 서예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예에서 찾아낸 동양적 추상의 조형은 고암이 1960년대 이후 추상화의 세계를 펼쳐나가는 데 밑거름이 됐다. 붓을 입에 물고 쓴 구필서(口筆書), 왼손이나 발을 이용해 써내려간 작품 등 다양한 운필법을 구사한 흔적들은 고암에게 서예는 단순한 여기가 아니라 당당한 조형실험의 장임을 웅변해준다.
그러나 고암의 서예는 그동안 국내에서는 단 한 차례도 소개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고암의 작품중에서 유일하게 미공개 장르로 남아 있던 분야다. 서울 평창동 이응노미술관이 10번째 기획전으로 마련한 ‘고암서예 시·서·화’전은 그렇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전시다.
고암은 19세 때인 1922년 해강 김규진의 문하로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이전부터 서예를 연마했다.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을 제작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종종 서예전을 열기도 했다. 고암은 86세를 일기로 작고하기까지 서예와 문인화 정신을 기반으로 사군자에서 추상화, 콜라주, 문자추상, 군상에 이르는 다채로운 회화작업과 조각, 도자기, 판화, 태피스트리 등 장르를 넘나드는 방대한 작업을 펼쳤다.
전시장엔 1970∼80년대 파리에서 제작된 이응노의 서예작품 50여 점이 나와 있다. 글씨이면서 그림이고 동시에 시인 작품들이다. 고암은 자작시나 화론, 훈계, 시정(詩情), 조국애 등을 고체와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에 이르는 전통서체는 물론 고암만의 독특한 창작서체로 표현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자작시로 쓴 ‘상풍낙엽’(1982년).“상풍낙엽노상수(霜風落葉路上繡) 여골수지작화천(餘骨樹枝作畵天), 풀이하면 “서릿바람에 떨어지는 잎은 길 위에 수를 놓고 앙상한 나뭇가지는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있네”라는 애상적인 시상이 담긴 작품이다. 율곡과 신사임당의 시를 좌우에 배치한 서예작품이나 동백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작가가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작품은 그 자체가 한폭의 그림. 주역의 64괘 한 자 한 자에는 인간의 형상이 담겨 있다. 글자의 한 획 한 획이 음률을 타고 춤을 추면서 서예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든다.
정헌이 한성대 회화과 교수는 “도불 이후 고암의 추상화들이 대체로 글씨를 주제로 하거나 운필을 통한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예적 미감은 고암 그림의 처음과 끝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5일까지. 관람료 일반 2000원, 학생·단체 1000원 (02)3217-5672.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그러나 고암의 서예는 그동안 국내에서는 단 한 차례도 소개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고암의 작품중에서 유일하게 미공개 장르로 남아 있던 분야다. 서울 평창동 이응노미술관이 10번째 기획전으로 마련한 ‘고암서예 시·서·화’전은 그렇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전시다.
고암은 19세 때인 1922년 해강 김규진의 문하로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이전부터 서예를 연마했다.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을 제작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종종 서예전을 열기도 했다. 고암은 86세를 일기로 작고하기까지 서예와 문인화 정신을 기반으로 사군자에서 추상화, 콜라주, 문자추상, 군상에 이르는 다채로운 회화작업과 조각, 도자기, 판화, 태피스트리 등 장르를 넘나드는 방대한 작업을 펼쳤다.
전시장엔 1970∼80년대 파리에서 제작된 이응노의 서예작품 50여 점이 나와 있다. 글씨이면서 그림이고 동시에 시인 작품들이다. 고암은 자작시나 화론, 훈계, 시정(詩情), 조국애 등을 고체와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에 이르는 전통서체는 물론 고암만의 독특한 창작서체로 표현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자작시로 쓴 ‘상풍낙엽’(1982년).“상풍낙엽노상수(霜風落葉路上繡) 여골수지작화천(餘骨樹枝作畵天), 풀이하면 “서릿바람에 떨어지는 잎은 길 위에 수를 놓고 앙상한 나뭇가지는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있네”라는 애상적인 시상이 담긴 작품이다. 율곡과 신사임당의 시를 좌우에 배치한 서예작품이나 동백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작가가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작품은 그 자체가 한폭의 그림. 주역의 64괘 한 자 한 자에는 인간의 형상이 담겨 있다. 글자의 한 획 한 획이 음률을 타고 춤을 추면서 서예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든다.
정헌이 한성대 회화과 교수는 “도불 이후 고암의 추상화들이 대체로 글씨를 주제로 하거나 운필을 통한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예적 미감은 고암 그림의 처음과 끝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5일까지. 관람료 일반 2000원, 학생·단체 1000원 (02)3217-5672.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2005-04-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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