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열리자 짧은 머리의 그랭구아르가 등장한다.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장엄미 넘치는 서곡 ‘대성당의 시대’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부터 객석은 그의 매력에 단번에 빠져들고 만다. 영·미 뮤지컬과 확실히 다른 맛으로 한국 관객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프랑스 오리지널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이 작품을 본 관객이라면 무엇보다 가장 빛난 인물이 그랭구아르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리샤르 샤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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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샤르 샤레스트
극중 사회자이자 음유시인인 그의 인기는 커튼콜 때 여실히 확인된다. 주인공에 이어 그가 등장하면 한층 더 폭발적인 갈채와 환호성이 터진다. 여성팬들은 그 앞에 몰려들어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려댄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 매끄러우면서도 힘있는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창력으로 단연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그랭구아르 역의 리샤르 샤레스트(34)를 5일 그가 묵고 있는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만났다.
캐나다 출신의 샤레스트는 99년 이 작품에 합류한 이래 지금까지 400번 이상 페뷔스만을 연기해온 ‘페뷔스 전문 배우’. 그랭구아르를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때문에 한국 공연은 그에게도 뜻깊다. 그런데다 관객의 반응이 이토록 뜨거우니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그랭구아르는 스포츠팀으로 비유하자면 주장 같은 역할이라 누구나 욕심낼만 하죠. 지난해 10월 한국 공연이 있다는 말을 듣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 그랭구아르를 자청했습니다. 사실 그랭구아르는 ‘이방인의 궁전’에서 보듯 자기 목숨을 구제하기 바쁜 인물이에요. 페뷔스처럼 여성을 매혹시킬 만한 멋있는 인물이 아닌데도 사랑받고 있다는 게 기쁩니다.” 혹시 “꿈이 아닐까.”하며 팔을 꼬집어 보기도 할 만큼 믿기지 않는단다.
그는 이번 무대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그랭구아르를 창조해내고 있다.”고 했다.“그동안 페뷔스로 무대에 서면서 내가 그랭구아르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습니다. 소설처럼 겁 많고 익살스러운 면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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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프랑스 초연 이래 그랭구아르를 맡았던 브루도 펠티에의 영향으로 지금까지의 그랭구아르는 모두 긴 머리였다. 짧은 머리는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 시도한 것.DVD를 미리 접한 관객들은 처음엔 낯설었겠지만 한층 매력적인 그랭구아르의 탄생에 오히려 더 반색했다.“조니 뎁처럼 펑키한 분위기로 자유롭게 비쳐지길 원했다.”며 “가발을 쓰라고 해도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웃는다.
그는 97년 캐나다에서 솔로 앨범을 발표한 가수이자 영화 시나리오, 뮤지컬 극본을 쓰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래저래 그랭구아르와 통하는 면이 많은 셈.
“한국 관객들이 소극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그는 공연이 끝날 때마다 쏟아지는 기립박수, 환호성에 “기분 좋은 놀라움을 경험하고 있다. 감사하다.”며 현재 공연팀 분위기도 지금까지 어떤 공연보다 최고라고 흐뭇해했다.3월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02)501-1377.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2005-03-0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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