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풋고추,그리고 물기를 탈탈 털어 낸 상추,냄새마저 싱그러운 오이,이런 것들을 된장에 푹,찍어 한 입 가득 먹고 싶은 계절이 되었다.간혹 별미로 보리밥집을 찾아 외식은 해도,이런 푸성귀를 온 가족이 둘러앉아 달게 먹는 일은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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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안타깝고,한편으로는 그립다.예전에 ‘신토불이(身土不二)’는 애국심의 발로였다.값싼 외국 농산물에 맞서서 싸우기 위한 캠페인성 슬로건 성격도 강했다.그러나 지금 신토불이는 ‘건강 슬로건’ 성격이 강하다.우리 땅에서 난 식품이 우리 몸에 가장 잘 맞는다.이는 그냥 정서적인 문제나,우리의 전통을 되찾자는 고리타분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과학의 문제다.음식도 하나의 화학물질이다.우리나라 사람의 몸은 우리나라 땅에서 나는 식품에 포함되어 있는 이런 화학물질에 익숙하도록 진화되어 온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먼지나 공해물질에 대해서는,그것이 이질적이다,그래서 병을 일으킨다고 해서 아주 민감하다.그러면서도 정작 음식에 포함되어 있는,예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온갖 화학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것에는 정말 관대하다.수 천,수 만년 동안 이뤄져 내려온 식습관에 맞게 우리 몸은 진화해 왔는데,그러한 체계와 어긋나는 화학물질이 갑자기 우리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우리 몸이 거기에 적응하느라 아토피 질환이나 각종 생활습관병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요새,아이들이 유과나 강정,튀밥을 주로 먹는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아해하고 그럴 수 있느냐고 되물을 것이다.한편으로는,옛날 아이처럼 그런 것도 먹느냐는 투로 신기하게 보거나,또다른 사람은 온갖 맛있는 과자가 천지인데 그런 것을 맛보지 못하는 것을 안쓰러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우려와는 달리 우리 옛 음식을 먹어온 아이들은 그걸 정말 맛있게 먹는다.요즘 과자는 여러가지 첨가물로 자극적인 맛을 내지만,우리 전통 과자들은 그렇지 않은 대신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맛을 내기 때문이다.요즘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조급해지는 것은 이와 아주 무관하지 않다.당장 혀끝에 닿았을 때 강렬한 맛을 느껴야만 하는 아이와,음식이란 오래 씹어 먹어야 제대로 된 맛을 음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 사이에는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커다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의 옛날 과자는 맛도 맛이지만 식품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깨강정을 먹으면 깨 맛을 느낄 수 있고,감자튀김 과자를 먹으면 감자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이것은 중요한 성질이다.아이에게 제대로 된 맛을 찾아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이가 식품을 식품답게 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식품 본연의 맛을 느낄 줄 모르면서 들에 나가 “얘들아,이것은 들깨고,저것은 참깨란다.”라고 설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설프고 제대로 된 환경교육으로 와닿지 않는다.환경교육은 밥상이나 간식상과도 맞물려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고,새로운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고,우리 삶을 혁신시키는 것 모두 좋다.여기에 ‘진보’라는 이름을 붙이든,‘진화’라는 이름을 붙이든 다 좋다.그러나 이를 음식에까지 확장시켜 여기에 ‘진보’니 ‘진화’니 이런 이름을 붙이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오히려 그 반대가 진리에 더 가까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어느덧 햄버거와 치즈·피자가 된장국·김치·밥보다 더 ‘문명화’된 음식으로 비춰지고 있으니 얼마나 걱정스러운 일인가.
입맛에 관한 한 옛날로 돌아가자.이 땅의 엄마들이 조금만 더 부지런해지고 아이들에게 좀 더 끈기있게 설명하면 된다.수입밀과 온갖 질병에 연관된 설탕을 듬뿍 넣은 과자 대신 맛은 다소 건조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우러나오는 강정이나 유과를 먹여보자.입에 넣으면 당장 스르르 녹는 과자 대신 볶은 콩을 먹여보자.온갖 색소로 형형색색 맛을 내는 음료수보다 식혜와 수정과를 만들어 먹여보자.
다른 것은 몰라도 맛에 관해서는 우리 아이들을 토종으로 키워보자.거기서 얻는 것이 어찌 ‘토종’이라는 정체성뿐이겠는가.˝
2004-07-1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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