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별’ 합창하며 EU 떠나는 英… “美서 텍사스 빠진 것과 같아”

‘석별’ 합창하며 EU 떠나는 英… “美서 텍사스 빠진 것과 같아”

김민석 기자
김민석 기자
입력 2020-01-31 01:48
수정 2020-01-3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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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압도적 찬성으로 브렉시트 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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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간)  협정이 압도적 지지로 비준된 뒤 의원들이 손을 맞잡고 스코틀랜드 가곡 ‘올드 랭 사인’을 부르고 있다. 브뤼셀 AP 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협정이 압도적 지지로 비준된 뒤 의원들이 손을 맞잡고 스코틀랜드 가곡 ‘올드 랭 사인’을 부르고 있다.
브뤼셀 AP 연합뉴스
EU 영향력 줄고 英 경제순위 日 아래로
외신 “양측 모두 손해”… 존슨은 “기회”
英, 11개월간 합의 못 하면 노딜 가능성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의회에 29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가곡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 울려 퍼졌다. 한국에서 ‘석별’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하는 가사와 곡조가 익숙한 노래다. 원어 가사는 이렇다. ‘어릴 때 함께 자란 친구를 잊어선 안 된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 다시 만났네. 자 한잔하세.’ 세계적으로 헤어질 때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며 부르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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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압도적 지지(찬성 621표, 반대 49표)로 비준된 직후 유럽의회 의원(MEP)들은 손을 맞잡고 이 노래를 합창했다. 이로써 영국은 31일 오후 11시부로 47년간 함께했던 정든(?) EU를 떠나기 위한 공식 절차를 모두 마쳤다.

의사당엔 환호와 서운함이 교차했다. 영국 브렉시트당 나이절 패라지 대표와 이 당 소속 MEP들은 ‘브라보’를 외쳤다. 노동당의 주드 키어턴 달링 의원은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인 것 같다. 브렉시트는 우리 정체성 근간을 공격했다”고 울먹였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표결 도중 페이스북 생중계를 통해 “EU와 위엄 있는 결별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브렉시트는 위대한 순간이자 희망과 기회”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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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의회에서 29일(현지시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정이 비준된 뒤, EU 표어인 ‘다양성 속 통합’이 적힌 띠를 목에 두른 한 의원이 울음을 참고 있다.  브뤼셀 AFP 연합뉴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의회에서 29일(현지시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정이 비준된 뒤, EU 표어인 ‘다양성 속 통합’이 적힌 띠를 목에 두른 한 의원이 울음을 참고 있다.
브뤼셀 AFP 연합뉴스
그러나 외신들은 EU와 영국 양쪽 모두 ‘손해 보는 장사’라고 지적했다. EU는 유엔 상임이사국이자 핵보유국인 영국을 잃어 영향력이 줄고, 영국의 경제순위는 일본 아래로 떨어진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영국은 이제 미국·중국·EU 등 강대국들 사이에서 홀로 경쟁해야 한다”고 썼으며, 뉴욕타임스는 “EU가 영국을 잃은 것은 미국이 텍사스를 잃은 것과 같다”고 보도했다.

31일부터 영국은 더이상 EU 일원이 아니지만 올 연말까지 EU 법을 준수하며 관세동맹, 단일시장에 남아 있게 된다. 영국과 EU 사이 무역협정 등을 체결하고 세부 사항을 조율하기 위해 마련된 과도기 때문이다. 당장 11개월 동안은 브렉시트 충격이 없지만 내년에 다시 ‘노딜’(합의 없는) 브렉시트 위기가 엄습,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영국이 단일시장에서 탈퇴하면 무역 상대국으로서 EU와 체결해야 할 협정이 매우 많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집행위원장은 연말까지 양측이 포괄적 합의를 이루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워싱턴포스트는 시한이 임박하면 존슨 총리가 또 노딜을 들먹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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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회 의원인 나이절 패라지 영국 브렉시트당 대표가 개표 상황을 보며 크게 웃고 있다. 브뤼셀 신화 연합뉴스
유럽의회 의원인 나이절 패라지 영국 브렉시트당 대표가 개표 상황을 보며 크게 웃고 있다.
브뤼셀 신화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혹은 그의 후임 미국 대통령과 무역 협정은 가장 큰 산이다. 트럼프라면 EU의 엄격한 식품안전, 동물복지 규정에 부합하지 못해 수출하지 못했던 농축수산물을 영국에 밀어 넣고 싶어 할 게 뻔하다. 미국 식품 가공업체들은 가금류를 염소 탄 물에 헹구고 항생제를 주사한 소를 도축하는데 EU는 둘 다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EU뿐 아니라 168개국과 750개 이상의 협약을 맺어야 하는 것도 영국의 숙제다.

영국인들이 즐겨 먹는 ‘피시앤드칩스’의 재료가 바뀌거나 가격이 뛸 수도 있는 게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변화일지 모른다. 주재료인 대구 값 인상이 예상돼서다. 영국 국내총생산에 극히 일부를 차지하는 수산업은 종사자가 2만 4000명에 불과하다. 그간 영국 바다는 아일랜드, 프랑스, 덴마크 등엔 중요한 어장이었다. 존슨 총리는 연말부터 이들 국가가 마음대로 조업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먼저 처리했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엔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EU 측으로부터 양보를 얻으려면 자국 어장을 다시 열어야 할 수도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2020-01-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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