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72% “EU 못 믿겠다”…EU위기론 현실로?

유럽의 긴축정책이 정치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실제 유럽연합(EU)에 대한 현지인들의 신뢰도가 곤두박질 친 것으로 나타났다.

EU 설문조사기관인 ‘유로바로미터(Eurobarometer)’가 지난해 말 유럽 6개국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EU에 대한 신뢰도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4일(현지시간) 이러한 조사 결과를 보도하며 “스페인과 독일, 이탈리아 등 역사적으로 EU 통합을 지지해온 국가들에서도 EU에 대한 신뢰가 아찔할 정도로 추락했다”고 분석했다.

설문 대상에는 EU에서 가장 큰 6개국인 독일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가 선정됐다. 이들 국가의 총 인구는 3억 5천 명으로 유럽 전체 인구 5억 명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유럽의 여론 악화는 EU 지지도가 가장 높았던 지난 2007년과 비교했을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2007년 조사에선 6개국 모두 EU를 신뢰한다는 비율이 절반 이상이었으나, 지난해에는 5개국에서 이 비율이 뒤집혔다.

설문결과 분석을 맡은 유럽 외교ㆍ안보분야 싱크탱크 유럽외교관계이사회(ECFR)는 “상처가 꽤 깊다”며 “채무국 또는 채권국 여하에 상관없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신뢰도가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국가는 긴축정책의 여파로 고통을 겪은 스페인이었다.

EU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스페인 국민은 2007년 23%에서 지난해 72%까지 치솟았다. EU를 신뢰한다는 국민은 20%에 그쳤다.

전통적으로 EU에 대한 신뢰가 높았던 이탈리아에서도 EU를 불신한다는 비율이 5년 전 28%에서 지난해 53%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독일은 불신한다는 비율이 36%에서 59%로, 프랑스는 41%에서 56%로 증가했다.

약 10년 전만 해도 EU 가입에 열정적이던 폴란드에서도 EU의 지지율은 급락해, EU를 신뢰한다는 비율이 68%에서 48%로 떨어졌다. 불신한다는 비율은 18%에서 42%까지 올랐다.

’유럽 회의론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여겨지는 영국에서도 불신한다는 비율이 29%에서 69%로 늘었다. 가장 급격하게 여론이 악화한 스페인에 이어 6개국 중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가디언은 “유럽 지도층의 악몽이 현실로 드러났다”며 “부유한 북부에서든 구제금융 바람이 몰아친 남부에서든 EU의 민주적 합법성에 더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는 별개로 지난주 시행된 유럽사회조사(ESS)의 조사에서도 치솟는 실업률 등으로 유럽인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기관은 “정치권에 대한 신뢰와 민주주의 대한 만족도가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떨어졌다”며 “특히 프랑스와 아일랜드, 슬로베니아, 스페인에서 두드러졌고 그리스는 걱정스러운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럽 재정위기로 직접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도 국가의 미래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