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이종수특파원|“자유·평등·박애, 모두 연대를….” “프랑스 만세! 공화국 만세!” 파리 소요사태 1주년을 이틀 앞둔 25일(현지시간) 오후 2시30분.300여명의 파리 빈민가 청년들이 파리 14구 당페르 로슈로 광장에서 거리 시위에 나섰다. 목적지는 프랑스 상원과 하원이었다. 주최자는 ‘방화는 그만(A.C.LEFEU:원뜻은 ‘자유·평등·박애, 모두 연대를…협회’인데 약자를 발음하면 ‘방화는 그만’이란 뜻)’ 회원들. 이들의 손에는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프랑스 120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받은 2만명의 서명이 담겨 있었다. 이 협회는 지난해 소요 사태의 발원지인 클리시 수 부아 지역 청년들이 ‘악몽’이 끝난 직후인 11월 지혜로운 해결책을 찾고자 만든 결사체다. 이날 가두시위는 협회 회원 70여명이 두 대의 미니버스로 ‘프랑스 장정’을 실시하면서 담은 생생한 민심을 정치인들에게 전달하는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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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교외 청년들의 협회인 ‘방화는 그만’ 소속 회원들이 25일(현지시간) 프랑스 하원을 향해 가두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파리 이종수특파원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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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교외 청년들의 협회인 ‘방화는 그만’ 소속 회원들이 25일(현지시간) 프랑스 하원을 향해 가두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파리 이종수특파원 vielee@seoul.co.kr
●“경찰도 희생자다”
오후 2시부터 100여명의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방화는 그만’ 회원들과 이들의 취지에 동참하려는 청년들이다. 녹색당원,‘반(反)자유주의’ 블록을 형성한 급진 좌파 멤버 등도 참가했다.
차도르를 쓴 라피카 방게라(21)에게 소감을 물었다.“전국 어디서나 반응이 좋아 힘들지 않았다. 주택·고용·불평등·차별 등 대도시 빈민가의 문제점은 똑같았다.” 해맑은 미소와 소신에 찬 대답. 이 파리지앵의 얼굴 어디에도 ‘소요 재발’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옆에는 모하메드 메시마시 회장이 기자들에게 에워싸여 질문 공세를 받고 있었다. 기자도 잠시 끼어들어 결사체를 만든 배경,‘프랑스 장정’에서 느낀 점 등을 물어봤다.
“몽펠리에·그르노블·리옹 등 전국 주요 도시를 돌았다. 어디서나 지난해 파리 외곽지역의 소요 사태가 잠재하고 있었다.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 그러나 폭력적 방법은 반대한다. 경찰도 희생자 아닌가.”
미국 억양의 한 기자가 순회 목적을 물었다.“차를 불태우기보다는 현명한 대안을 찾고 싶었다. 일시적 방안이 아니라 본질적 해법을…. 지도자 그룹은 우리가 전국을 누비며 담은 2만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윽고 2시30분이 되자 시위대가 대오를 정비했다. 대형 오디오를 실은 트럭에 오른 사회자가 외쳤다.“전진합시다.” 약간의 긴장감 속에 시위대는 첫 발을 내디뎠다. 전위대열은 어깨를 겯었다. 그 뒤를 ‘가장 위대한 정당은 국민’ 등의 플래카드를 든 회원들이 따라갔다. 시위대는 사회자의 구호 제창에 따라 “자유·평등·박애, 모두 연대를….”을 연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위대 규모는 늘어났다. 어림잡아 300명은 넘었다.
●“교육·노동의 평등한 기회를 원한다”
오후 4시. 갑자기 몇명이 대열에서 뛰쳐 나갔다. 기자를 비롯, 몇몇 취재진도 뛰어갔다.“무슨 일일까.” 알고 보니 이들은 협회의 대표단으로 상원에 ‘2만 청원서’를 전달하러 가는 길이었다. 안도의 숨을 돌리고 있는데 저 멀리 시위대가 보였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시위는 이어졌다. 거리의 시민들도 환영했다. 사회자가 다시 외쳤다.“하층민도 프랑스 국민이란 걸 보여줍시다.‘라 마르세예즈’를 합창합시다. 진격하자…진격하자….” 선동적 가사가 비장한 멜로디를 타고 울려 퍼졌다.
시위대는 끝까지 질서정연했다.1시간이 더 흘렀을까. 폴리스 라인이 보였다. 사전에 약속했던 대로 시위대는 정리에 나섰다.“우리가 준비한 청원서는 협회 대표들이 상·하원에 전달했다. 이제 집회를 마치고 차분하게 집으로 돌아갑시다.”(나중에 신문을 보니 상원은 청원서를 접수했지만 하원은 국회의장인 장 루이 드브레가 거부했다. 대신 협회 대표들은 4개 정당 대표들을 만났다.)
귀가를 준비하는 한 회원에게 “올해 소요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보도도 있던데?”라고 넌지시 물었다.
피해 의식 때문일까. 이브라힘(22)은 “성은 밝히지 말라.”며 “이번 행사로 교외지역 젊은이들의 뜻이 전달됐고 상황도 차분하기에 소요사태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이어 나름의 해법도 제시했다.“경찰이 우리를 ‘악(mal)’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미워하는 건 경찰이 아니라 그들의 관행이다. 우리는 교육과 노동의 기회를 원할 뿐이다.”
●파리 교외서 버스 방화 잇따라
한편 이날 밤 이후 두 건의 버스방화가 잇따라 당국을 긴장시켰다. 지난 22일 방화에 이어 세번째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밤 10시쯤 파리 서쪽 낭테르에서 청소년 6∼10명이 버스를 세운 뒤 인화성 액체가 담긴 병을 던졌다. 승객 10여명은 대피했다. 다음날 새벽엔 파리 동쪽 교외 바뇰에서 흉기를 들고 복면을 한 청소년 10여명이 승객들을 하차시킨 뒤 버스를 근처로 몰고 가 불을 질렀다.
vielee@seoul.co.kr
2006-10-2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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