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정부 주도 복지 정책의 위험성/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정부 주도 복지 정책의 위험성/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 2013-09-13 00:00
업데이트 2013-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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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대다수 중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내 아들도 학교와 학원에 다니고 있다. 여기까지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지만, 재미있는 것은 학교와 학원에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는 내 아내의 태도다. 아들이 다니는 학원에서 새로 바뀐 선생님이 지도가 미흡하든지 하면 아내는 당장 원장 선생님을 찾아가서 문의하고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아내와 다른 엄마들의 항의가 있으면 대개 학원 원장 선생님은 해당 사항을 최대한 바로잡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학원에 대해서는 호랑이 노릇을 하는 아내가 막상 아들의 중학교에 대해서는 순한 양처럼 행동한다. 어지간한 일들은 그냥 참고 넘어가고 학교의 일이나 수업에서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 발생해도 혼자서 좀 화를 내면 냈지 결코 교장 선생님을 찾아 가거나 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어째서일까? 학원에는 우리가 매달 상당한 돈을 내고 있으므로 돈을 낸 만큼의 결과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학원 원장으로서는 고객인 엄마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학생들이 다른 학원으로 옮겨갈 것이므로 온 힘을 다하여 고객들의 요구에 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학교는 어떤가. 우리는 아들의 중학교에 내는 돈은 전혀 없다. 어찌 보면 돈도 받지 않고 공짜로 가르쳐 주는 학교 선생님들에게 무엇을 요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다른 학교로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선생님과 얼굴 찌푸릴 일은 피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 선생님들의 입장에서 보면 급료가 나오는 곳은 교육부나 교육위원회이지 학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학부모의 호주머니에서 직접 돈을 받아야 하는 학원 원장들보다는 학부모들에게 신경을 덜 쓸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정부는 복지정책의 대폭적인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복지 정책을 하게 되면 혜택을 받는 국민이 자신이 혜택을 받을 기업을 고르고 직접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어떤 기업이 복지 사업을 할 것인가를 정하고 돈도 결국 정부가 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부로부터 위탁받아서 국민의 복지 사업을 담당하게 될 기업으로서는 실제로 서비스를 받는 국민들보다는 위탁을 주고 대금을 지급하는 정부 공무원들이 사실상 중요할 것임은 뻔히 예상되는 바이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억울한 일도 없지 않을까 싶다. 다시 우리 아들의 중학교로 돌아가면, 실 내가 직접 돈을 내지는 않지만 매월 내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세금에 의해서 학교가 운영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분명 내가 돈을 지급하고 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당당하게 가서 서비스의 향상을 요구할 수 없고 최악의 경우 다른 데로 옮길 수도 없으니 이렇게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학교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 학교는 정부가 돈을 지급하는 기관 중에서 비교적 많은 관심을 받고 서비스도 좋은 편이라고 생각된다. 정부에 의해서 대금이 지급되고 있으면서 막상 그 수혜자들인 국민에 대한 서비스에는 훨씬 더 무관심한 많은 기관이 우리 사회에 수없이 존재한다. 이석기 의원 문제로 체포된, 국가 체제를 부정하는 인사 중에서 정부로부터 월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아마 그 극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세금을 더 거두어서 국민의 복지를 늘린다는 것은 좋은 생각으로 들린다.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는 이런 좋은 생각이 좋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 이유는 복지의 혜택을 막상 국민들이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오히려 국민들의 혈세가 엉뚱하게 낭비될 것이 뻔히 예측되기 때문이다.

어떤 복지이든 그 혜택을 받을 사람이 직접 돈을 내고 구입해야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직접 돈을 건네지도 않는 사람이 혜택을 받으려 하면 정당한 대우를 받기 어렵다. 괜히 돈만 낭비할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 이러한 고민 없이 서둘러 시행되는 복지 정책의 확대는 국민의 부담만 늘리고 돌아오는 혜택은 미미한, 실패한 정책이 될 것이다.

2013-09-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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