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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고집불통’ 민주주의와 ‘눈동자’ 민주주의/장제국 동서대 총장

[열린세상] ‘고집불통’ 민주주의와 ‘눈동자’ 민주주의/장제국 동서대 총장

입력 2011-08-13 00:00
업데이트 2011-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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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국 동서대 총장
장제국 동서대 총장
결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이는 타협할 줄 모르는 미 민주당과 공화당 간에 벌어진 정쟁의 소산이다. 국가 부도를 목전에 두고서도 민주당은 건강보험 및 사회복지 관련 예산을 삭감하지 못하겠다고 버텼고, 야당인 공화당은 지지기반인 부유층을 의식해 증세는 절대 안 된다는 고집으로 일관했다. 물론 막판에 극적인 합의를 도출했지만 시장의 신뢰는 이미 무너진 후였다. 그 결과 세계증시는 요동쳤고, 피해는 전지구적 규모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미국 정치판은 각자 자신들의 지지기반만 의식하는 ‘고집불통’의 힘겨루기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때 미국의 정치는 위트가 넘치고 멋진 타협을 마술처럼 연출하여 국민적 자긍심을 한껏 올렸던 성숙한 민주주의의 표본이었는데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웃나라 일본도 매한가지다. 지난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초유의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그런데도, 일본의 정치권은 지리멸렬 상태이다. 여야는 끊임없는 ‘고집불통적’ 대립을 하고 있고, 집권 여당 내에서도 계파별로 나뉘어 상호 비난과 대책 없는 총리 사퇴만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한때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고 모범 사례로 평가받지 않았던가?

우리네 사정은 더 심각하다. 민주화 운동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져 있다. 여야가 두부를 자르기라도 한 듯 철저히 나뉘어 대립만 하고 있다. 사사건건 갈등이고, ‘고집불통’들의 전쟁터다. 표만을 의식, 검증되지 않은 나누어주기에만 골몰하는 포퓰리즘적 정책의 범람으로 국민들이 어리둥절해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최상의 정치제도라는 민주주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지금 겪고 있는 전지구적 민주주의 위기는 아마도 정치와 국민 간의 물리적 거리가 사상 유례 없이 가까워지고 있는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언론매체에 더하여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인 개개인의 입장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있다. 이러한 세상이 새로운 민주주의 환경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은 표만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고 만 것이다. 앞으로 정보통신이 발달하면 할수록, 단말기의 휴대가 더 간편해질수록 정치권은 더더욱 비타협적·근시안적·포퓰리즘적·자극적 언행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점잖을 빼고 장기적 안목을 운운하고 있다가는 정치판에서 밀려나기 십상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행태가 일시적인 국민의 관심과 열광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 후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되고 마는 데 있다. 정책이 검증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고, 잘못된 정책의 결과가 드러날 즈음이면 일을 주도했던 정치인은 이미 모든 것을 다 누리고 난 후 ‘행복한’ 은퇴의 노후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헤쳐 나갈 유일한 방법은 국민들의 ‘눈동자’ 민주주의밖에 없다. 즉,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뜨겁게 달구어지는 정치판을 바라봄에 있어서 여유를 가져야 하고, 누가 쭉정이고 누가 알맹이인지를 분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결국 이런 것이 능한 민족은 흥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멸하게 될 것이다.

정치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다양한 목소리는 물론 민주사회에서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무대 위의 플레이어들이 펼치는 ‘고집불통적’ 향연을 국민들은 주눅이 들 만큼 무서운 ‘눈동자’로 지켜 보아야 한다. 그래야 무대 위에서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될 것이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민주주의가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작금의 미국 사태는 운 좋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타협 없는 정치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며칠 상간으로 똑똑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지금 정치판이 뿜어내고 있는 수없는 포퓰리즘적 정책이 몇년 후에 어떠한 쓰나미로 엄습해 올지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눈동자’ 민주주의가 절실히 필요한 때라 하겠다.
2011-08-1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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