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국민참여재판 제도 구하기/한상희 건국대 헌법학 교수

[열린세상] 국민참여재판 제도 구하기/한상희 건국대 헌법학 교수

입력 2008-03-06 00:00
수정 2008-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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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시겔 감독의 영화 ‘평결’은 배심원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판사나 변호사가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당신들이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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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건국대 교수
한상희 건국대 교수
지난달 12일 대구지법과 18일 청주지법에서 실시된 배심재판(정확히는 국민참여재판)은 법을 만드는 사람이 법관이나 검사가 아니라 우리 시민들임을 공포하는 자리가 되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적인 상식과 지혜만 가지고도 무엇이 옳고 그르며 무엇이 유죄이고 어떻게 처벌되어야 하는지를 판단하고, 또 평가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재판참여의 경험을 통해 법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민주사법의 해묵은 요청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자리에 검찰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검찰은 두 재판에 대해 모두 항소하였다. 강도상해 혐의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대구지법의 경우에는 판결 이후 새로운 증거가 나왔으며, 정신지체 장애인의 살인 혐의에 징역 6년형을 선고한 충주지법의 경우에는 너무 가벼운 형이 선고되었다며 그 재판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결정이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첫 단추부터 검찰이 부인하는 셈이 되어 버린다는 점에 있다. 물론 검찰의 입장도 나름의 근거가 있다. 살인이라는 중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가벼운 형벌을 가하는 온정주의적 태도는 법의 엄정성과 통일성을 해친다. 판결 이후라도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그 판결을 교정하는 것 또한 정의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배심재판 제도는 이런 법률적 당위론을 넘어서는 가치를 가진다. 배심재판은 미국 독립선언의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나의 문제는 나와 나의 동료들이 만든 법에 의해서만 판단되어야 하기에 그들은 배심재판을 박탈한 영국 정부에 반기를 든 것이다. 실제 배심재판의 핵심에는 자기지배와 민주주의의 요청이 자리잡고 있다.

국민과 단절된 채 오로지 법률관료들이 자기들만의 기준과 판단에 따라 구성하는 ‘그들의 법’이 아니라, 설령 미진하거나 온정적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우리들의 법에 따라 내린 판결이 바로 우리의 생활을 규율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는 요청이 그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검찰의 항소는 취하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은 국민참여재판제도의 정착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되레 대구와 청주 두 재판의 미진함이나 미흡함을 비난하는 와중에 이제 갓 싹을 틔운 국민참여재판 자체를 무위로 돌릴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사실 온정주의나 심리·입증의 미진은 어느 나라의 배심재판이든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번 내려진 배심판결 자체를 항소로 이어지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배심재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항소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법률전문가의 눈에 이런저런 흠결이 보인다 하더라도 보통사람들의, 보통의 법감정에 의한 재판이 법률관료들에 의한 완벽한 재판보다 가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언제나 재판의 대상으로만 자리매김되었던 우리 국민이 자신의 법으로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재판을 만들어가는 최초의 사건이다.

그것은 사법의 민주화를 향한 첫걸음이자, 우리 사법체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발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는 재판을 바로잡기 위한 검찰의 항소보다는 민주적 사법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검찰의 눈높이 조정이 더욱 절실해진다. 배심재판의 흠결을 비판하기 앞서 검찰은 보통사람들의 온정주의에 대해 법의 엄정성을 설득할 수 있는 변론 능력, 보통사람들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된 공판관리 능력, 보통사람들의 법감정과 유효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럴 때 비로소 우리 검찰은 민주사법의 주체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헌법학 교수
2008-03-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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