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옮겨 심은 어린 나무들 앞에 나무벤치가 있다. 그저 앉았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시커멓게 그늘 좋은 큰 나무만 좋은 줄 알았다. 작은 나무들도 할 일을 다하고 있다. 잔가지들은 바람더러 샛길을 내라고 아낌없이 흔들리고 저녁볕 한 줌에도 애써 그늘을 짓는다.
부쩍 짙어진 그늘이 마주 앉은 내 발치에까지. 서툴고 모자란 어린 나무 그늘이 날마다 여물고 있다. 봄비에 다정하게 자랐으니 괄괄한 여름 장대비를 잘 견디겠다면서.
옛 시인 소동파는 일없이 고요히 앉았으면 하루가 이틀이 된다 했지. 그늘 바깥에 가만히 앉아 그늘을 배운다. 길어지는 저녁해가 어린 나무의 그늘을 오래 지켜 주는 유월의 나무벤치에서.
2023-06-0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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