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내가 상담하는 분들이 떠올랐다.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자존감이 낮아서요. 선생님, 아이 자존감 올려 주실 수 있죠?”
‘자존감 수업’이란 베스트셀러가 익숙하듯 바야흐로 낮은 자존감을 문제의 핵심으로 보는 시대다. 윌 스토는 ‘셀피’라는 책에서 실체를 분석했다. 그는 1970년대 칼 로저스의 영향을 받은 캘리포니아 한 주의원의 열성적 노력에서 자존감이 중요해지고 양육과 교육현장으로 퍼졌다고 했다. 자기애지표가 1986년 15.5에서 2006년에는 21.5로 30%나 증가했는데, 이건 같은 연령대에서 키가 2.5㎝나 커진 것과 같았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부모가 과한 칭찬을 하는 것이 관찰됐고, 자존감을 넘어 자기애적 성향을 강화하며 타인에 대한 공격성, 배려 부족, 물질주의적인 면이 커졌다. 그리고 완벽주의적 성향의 평균값이 올라가서 비현실적ㆍ이상적 자아상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우울, 약물 남용, 섭식장애나 자해가 증가했다.
ⓒ 한선현 작가
그런데도 자존감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몇십 년 동안 믿어 왔다. 우리 사회의 개인 자존감을 높이려는 노력에 최선을 다한 결과는 자기애의 부적절한 상승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나도 모르게 자기애의 평균값이 올라간 상태라 한두 번의 실망이나 실패가 견디기 어려운 아픔으로 느껴지게 됐다. 적절한 지적은 후벼파는 공격으로, 다시 시작하려는 용기는 이미 경쟁에서 늦어 버렸다는 좌절로 인식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우리 사회도 한 세대 동안 자존감의 평균은 의식하지 못한 채 꽤 올라가 현실의 객관적 나보다 더 높아진 징후가 보인다. 나를 지켜 주는 방어막이 되기보다 좌절에 철퍼덕 곤두박질치게 할 위험 요소가 됐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그 마음 말이다. 오랫동안 무조건 자존감만 높이면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했다가는 건강하지 않은 쪽으로 자기애만 증가하고, 분노와 공감 결여만 늘어날 뿐 막상 인생에는 별 도움이 안 됐던 것이다. 이런 증가는 독이 될 뿐이다.
자존감은 결과물이니 시동을 거는 것은 하루의 작은 즐거움에서 얻을 수 있다. 큰일을 할 엄두를 낼 수 없다면 빈도를 높여서라도 지금 괜찮다, 이 정도도 나쁘지 않다, 이런 나라도 쓸 만하다는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다음에는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가 나를 지켜 줄 것이다. 실은 이게 건강한 자존감이기는 하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뭐라도 써 보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한 줄씩 써 나가는 것이다. 오늘 세운 목표만큼 써 놓으면 그만큼 마음에 들고 그게 만족을 주길 바라면서…. 어려워 보이던 자존감. 알고 보니 별것 아닌 내 행동의 결과일 뿐이다.
2021-12-14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