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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광고 엿보기] 최초의 라디오 제품 광고

[근대광고 엿보기] 최초의 라디오 제품 광고

손성진 기자
입력 2021-03-14 17:08
업데이트 2021-03-15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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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27년 1월 31일자에 실린 라디오 광고. 최초의 라디오 제품 광고로 추정된다.
매일신보 1927년 1월 31일자에 실린 라디오 광고. 최초의 라디오 제품 광고로 추정된다.
1888년 헤르츠가 전파의 존재를 입증했고, 1895년에는 ‘무선통신의 아버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마르코니가 무선통신 장치를 발명했다. 마르코니가 무선 전신통신을 발명했다면 음성 통신, 즉 라디오 방송이 가능해진 것은 미국의 리 디포리스트가 3극 진공관을 발명한 덕이다. 디포리스트는 ‘라디오의 아버지’ 또는 ‘텔레비전의 할아버지’로 불린다. 1908년 디포리스트는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서 음악을 방송하고, 1910년에 뉴욕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중계방송하기도 했다. 1920년 11월 2일에는 미국 피츠버그에 설립된 세계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인 KDKA 방송국에서 정식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라디오 방송이 시험적으로 시작된 것은 1925년 무렵이다. 이듬해 이런 기사가 있다. “체신국에서는 라디오 시험방송을 매주 네 차례 하여 오던바 현재 방송 청취 허가를 얻은 1000명 중에 조선인이 겨우 100명밖에 되지 아니하여…매주 목요일은 순전히 조선말을 방송하기로 하여….”(시대일보, 1926년 7월 28일자) 처음에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도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했고, 라디오를 가진 한국인이 겨우 100명 정도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27년 2월 16일 출력 1㎾, 주파수 870㎑로 경성방송국에서 첫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이때 라디오 보급 대수는 1440대로 조금 늘었고, 이 중 한국인이 275대를 소유한 것으로 돼 있다. 방송 프로그램은 일본어와 한국어가 3대1의 비율로 짜여 있었다. 개국 초기의 방송 내용은 주식, 날씨, 어린이 방송, 남도 단가, 뉴스 등이었다(매일신보, 1927년 2월 18일자). 당시의 라디오는 성능이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이 나빴지만 매우 비쌌다. 당시 쌀 한 가마 가격이 4원이었는데 라디오 수신기는 수십 원에서 수백 원까지 했다고 한다. 값비싼 라디오를 고쳐 주겠다며 슬쩍 가져간 도둑이 붙잡히기도 했다.

라디오는 가정과 학교 등에 점차적으로 보급됐다. 대구에 풀장을 개장했는데 라디오를 틀어 놓아 수영을 하면서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됐다는 기사가 있다(부산일보, 1927년 6월 30일자). 당시에는 라디오에도 요즘의 TV 시청료 같은 청취료를 부과한 모양이다. 청취료를 내지 않고 몰래 듣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라디오 도청자는 엄벌에 처한다’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매일신보, 1927년 11월 6일자). 방송 광고가 없었으니 청취료는 경성방송국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광고 속의 라디오는 진공관을 갖춘 초기 형태의 라디오로 미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인다. ‘구미 고급 무선전화기(라디오)와 부분품을 직수입 판매’한다고 쓰여 있다. 경성방송국 청취 계약도 받는다고 돼 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2021-03-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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