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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향월대 위에 올라간 조선백자/최나욱 작가·건축가

[문화마당] 향월대 위에 올라간 조선백자/최나욱 작가·건축가

입력 2023-04-06 00:08
업데이트 2023-04-0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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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욱 작가·건축가
최나욱 작가·건축가
한때 전시 디자인은 작품 설치나 공간 구획 정도에 그쳤다. 관람 행위까지 작품의 일부로 다루는 현대미술 특성상, 외부 요소인 전시 디자인은 삼가야 마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술이 어느 때보다 대중친화적인 시대에 이르면서 전시 디자인은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도맡는다. ‘사진 찍고 싶은’ 전시가 되고자 할 때 작품으로 이를 유치하게 담당할 수는 없으니, 되려 전시 디자인이라는 외부 요소로 장식적인 연출을 해내는 것이다.

재개관 이후 예약 경쟁에 시달리는 리움미술관의 기획전시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도 단연 전시디자인이 돋보인다. (직접 바닥재를 뜯는 게 작품의 일부로, 전시 공간까지 작가가 전두지휘한 카텔란의 전시와 대조된다.) 백자를 사방에서 볼 수 있도록 유리 상자를 하나하나 만들어 담았는데, 렘 콜하스가 설계한 블랙박스 전시 공간 안에서 조명을 받은 전시물 간 대비의 효과가 남다르다. 좋은 전시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관람객을 전시물 앞에 붙잡아 머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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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은각사에 있는 향월대(왼쪽).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에서 백자를 전시한 모양(오른쪽). 최나욱 작가 제공
일본 도쿄 은각사에 있는 향월대(왼쪽).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에서 백자를 전시한 모양(오른쪽).
최나욱 작가 제공
전시의 기승전결에 있어 하이라이트는 ‘백자 매병’을 단독으로 전시한 공간에서 펼쳐진다. 빽빽하게 전시된 공간을 지나서 하얀 공간 안에 반사광이나 다른 요소 없이 차분하게 전시된 모습은 모두가 사진을 찍어가는 포토제닉이다. 관람객의 시선 높이에 맞추어 동산 모양으로 만들어진 좌대 덕분에 몰입도가 대단하다.

그러나 차분한 정서를 전달하는 이 좌대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젠 스타일(禪)’에 기반하는 조형이다. 서울시 문화재전문위원 김해경은 이를 두고 “후지산 모양의 향월대”라고 지적한다. 향월대는 19세기 우키요에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으며 도쿄 은각사 정원을 대표하는 요소다. 내적 논리나 의미에 대한 검토없이 국내 인테리어 업자들이 무분별하게 즐겨 쓰느라 얼마간 친숙해진 이 조형이, 다름 아닌 조선 백자 전시에까지 등장한 것이다. 모방은 그것을 규범으로 인정한다는 뜻인데, 한국 미학을 밝혀야 하는 전시에서 일본 미학을 따라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2015년 살바토레 세티스와 안나 안귀솔라가 큐레이팅한 전시 ‘Serial Classic’은 ‘모방’이 ‘클래식’을 결정짓는 요건이라는 사실을 시사했다. ‘좌대’가 ‘건축’과 ‘조각’과 맺는 관계를 살핀 OMA의 전시디자인을 통해 전시 주제가 예리해졌다는 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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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살바토레 세티스와 안나 안귀솔라가 큐레이팅한 전시 ‘Serial Classic’은 ‘모방’이 ‘클래식’을 결정짓는 요건이라는 사실을 시사했다. ‘좌대’가 ‘건축’과 ‘조각’과 맺는 관계를 살핀 OMA의 전시디자인을 통해 전시 주제가 예리해졌다는 평을 받는다.
2015년 살바토레 세티스와 안나 안귀솔라가 큐레이팅한 전시 ‘Serial Classic’은 ‘모방’이 ‘클래식’을 결정짓는 요건이라는 사실을 시사했다. ‘좌대’가 ‘건축’과 ‘조각’과 맺는 관계를 살핀 OMA의 전시디자인을 통해 전시 주제가 예리해졌다는 평을 받는다.
예쁜 전시 디자인이 많은 사람을 유인하고 전시물을 효과적으로 보이게 한다지만, 그것이 전시물의 본질과 상충한다면 이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같은 전시디자이너가 연출한 조각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 ‘노실의 천사’도 이 맥락에서 비판받은 바 있다. 이 전시 디자인은 다양한 조형의 좌대로 눈길을 끌었는데, 이는 조각가로서 숙명적으로 고려하는 ‘좌대’에 대한 작가 개인의 고민과 작품의 내적 논리를 해치고 있었다. 표면적인 것만을 중시하는 게 당연시되는 사회이지만, 그 와중에 전시 디자인은 그럼에도 내적 의미와 논리를 중시하고, 지적인 디자인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대표적인 분야이니 아쉬울 따름이다.

이 부분은 오늘날 시각예술가들에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이 눈요기에 치중하면 그만인 걸까? 언젠가 한국은 예쁜 공간 하나만 생겨나도 이를 찾아나서는 미학적 불모지였지만, 어느새 발빠른 인터넷 문화에 기반해 골목 어디를 가도 신경 쓴 디자인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그런 만큼 창작의 내적 논리나, 표절과 같은 외적 윤리는 결여되어 이런저런 문제가 생겨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괜찮은 취향을 갖추고, 업자가 내놓은 결과물이 전문가와 별반 차이가 없어질 때, 이 유행에 덩달아 휩쓸리기보다는 다른 방향을 찾아야만 한다.
2023-04-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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