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뇌부 인식 바뀌어야 軍 변화 가능하다

[사설] 수뇌부 인식 바뀌어야 軍 변화 가능하다

입력 2011-01-10 00:00
수정 2011-01-1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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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들 차량에서 성판(星板·별)을 떼려던 방침이 백지화됐다. 특별한 때와 상황에만 성판을 달기로 했다는 게 국방부의 입장이다. 말이 특별한 때·상황이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군 사정상 핑계에 불과하다. 더 씁쓸한 것은 ‘최소한의 예우는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는 국방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당사자인 장군들의 반발이 어땠을지를 짐작하게 한다. 성판 떼기는 군에 만연한 권위주의를 없애 강군으로 거듭나자는 개혁의 한 상징이다. 그런 사소한 것부터 반발에 막힌 마당에 국방개혁이 제대로 될지 걱정이 앞선다.

우리 군이 본격적으로 추진 중인 국방개혁의 요체는 조직·장비의 효율성 제고를 통해 응전·예방 태세를 굳건히 다지는 것이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끝에 불고있는 전군 차원의 개혁과 정신무장에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런 마당에 성판 떼기 정도에도 딴죽을 걸고 나선 장군들에게 개혁의지가 있기나 한 건지 의문스럽다. 우리는 군 개혁 방향이 나왔을 때 무엇보다 수뇌부의 정신무장과 쇄신이 중요함을 주장했다. 그런데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은 영 딴판인 것 같다. 지난달 합동참모본부 인사때 육군이 주요 자리를 도맡은 건 개혁의 큰 화두였던 군 합동성 강화와 거리가 멀다. 지난해 K21 장갑차 침수사고 관련자 대부분에게 가벼운 경고조치만이 내려진 사실도 며칠 전 밝혀졌다. 비리·과실에 대한 엄중 문책을 외치던 군 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을 납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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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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