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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칼럼] 명목상 군수와 실제 군수

[박재범칼럼] 명목상 군수와 실제 군수

입력 2010-07-03 00:00
업데이트 2010-07-0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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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5기 지방정부가 최근 출범했다. 16개 광역자치단체장과 시장·군수·구청장 등 기초자치단체장 228명, 광역의원 761명, 기초의원 2888명에 16개 시·도 교육감과 82명의 교육의원이 임기를 시작했다. 국민은 이들이 지난 1일 취임식에서 보인 겸손과 검소의 초심을 임기 내내 지키며 솔선수범하기를 기도하는 심정이다. 출범 초기임에도 걱정이 담긴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은 초를 치려는 뜻이 아니다. 기초단체장들이 민선 4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초유의 여야 동거 지방정부 실험 역시 주민 생활 향상을 놓고 경쟁하는 양상으로 전개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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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 주필
박재범 주필
그러나 5기 단체장도 자칫하면 4기와 비슷한 유형의 덫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우려스럽다. 4기 때에는 여야 골고루 지자체 230곳의 41%인 94명이 기소됐다. 개인의 품성이 부라퀴로 모질고 독해서 그랬다고 보기 힘들다. 비리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 아닌가 싶다. 5기 역시 4기와 똑같은 환경이다. 위험이 마찬가지로 잠재돼 있다.

실제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공식 선거비용이 기초단체장의 경우 2억 3000만원이지만, 상당수의 선거구에서 이를 초과했을 것이라고 한다. 선거용 전광판을 탑재한 트럭 한 대의 값이 1억원에 이른다. 홍보물 제작과 식대 등의 비용은 눈 깜짝할 새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스킨십을 쌓은 후보가 아닐 경우, 대략 전체 마을을 3차례 돌면 당선이 아슬아슬했고, 5차례 정도 돌았을 때 당선이 유력했다고 한다. 지방이 대체로 산악지형이어서 골짜기 중심으로 촌락이 형성된 점을 감안하면, 한 개 지자체에 읍면이 10곳 안팎이고 읍면마다 골짜기 수가 10여곳에 이르므로 후보가 돌아다녀야 할 골짜기 수는 100곳 전후에 달하게 된다. 골마다 선거책임자를 두었다면 얼마쯤 선거비용이 들어갔을지 가늠할 수 있다. 대도시는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지방의 기초단체장은 상당수가 임기 첫발부터 금전적 부담에 짓눌려 있을 개연성이 높다.

단체장은 이 난관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4기 때 기소된 단체장의 혐의를 보면 윤곽이 드러난다. 선거 비용 60억원을 뒷감당하지 못해 자살한 사람도 있고, 비리로 해외도피에 올랐다가 체포된 일도 있다. 다른 형태는 승진 및 보직 장사이다. 4기 때 명목상 군수와 실제 군수가 다르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벌써부터 3, 5, 7, 9라는 암호 같은 숫자가 시중에 나돌고 있다. 7급에서 6급 승진하려면 3000만원이고 그 위의 계급일수록 단위가 홀수로 올라간다는 식의 썩 유쾌하지 못한 소문이다. 불편한 진실이 하나 더 있다. 물 좋은 보직이 한정돼 있으므로, 서로 상대방을 밀어내기 위해 네편 내편 가르기가 심화되는 것이다. 공직사회에서 ‘중립은 적’이라고 한다. 끼리끼리 모인 곳에서는 반드시 부정비리의 싹이 움튼다. 주민 이익증진과 다른 방향이다. 이게 4기에서 빚어졌던 부정적 현상이다. 5기는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반환점에 다다랐다. 그간 많은 일을 했으나, 돌이켜보면 가슴에 울림을 남기는 일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평가가 짙다. 말만 많고 성과는 없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때 검찰개혁, 연정 제의, 개헌 제안, 대북 퍼주기 공방, 강남 아파트값 잡기 논란, 세종시 관련 법 통과 등이 기억나는 일이다. 지금은 경제 회복을 빼면 행정구역 개편, 개헌 논의, 천안함 사태, 집값 폭락 우려, 부정부패 퇴치 등이 주요 국내 이슈로 떠오른다. 어젠다가 대체로 비슷한 셈이다. 그러면 결과물은 어떤 변별력을 나타내고 있을까. 이제 정부는 나라의 바탕을 탄탄히 다지는 일을 선택하고 거기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추수를 염두에 두어야 할 시점이다. 나라의 근본 중 하나가 지방자치의 정상화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행정구역 개편과 기초의원 정당공천 배제 등 지방자치와 관련된 해묵은 과제들이 앞으로 어떻게 풀려나갈지 주목하게 된다.

jaebum@seoul.co.kr
2010-07-0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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