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시와 정치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시와 정치

입력 2021-02-03 17:06
수정 2021-02-04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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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영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오길영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바이든 취임식에서 22세 된 어맨사 고먼이 낭독한 시가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먼은 2017년에 미국 의회도서관이 청소년 계관시인 제도를 만들면서 초대 계관시인이 됐다. 시인은 지나치게 예민한 청각 문제, 말더듬의 어려움을 겪은, “노예의 후손이고 홀어머니가 키운 깡마른 흑인 소녀”로 자신을 규정한다. 낭송된 시는 분열을 딛고 화해를 이룰 것을 요청한다. 시를 읽으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링컨’이 떠올랐다. 영화는 노예제 폐지를 규정한 수정헌법 13조 제정을 위한 링컨의 분투를 다룬다. 링컨은 두 개의 과제를 마주했다. 하나는 노예제 폐지이고, 다른 하나는 북부연합과 남부연방으로 미국이 분열되는 걸 막는 것이었다. 남북전쟁, 정확히 말하면 내전(civil war)은 노예제도 폐지를 둘러싼 찬반 대립 때문에 일어났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렇지 않다. 링컨도 만약 노예제를 폐지하지 않고 국가의 통합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더 중요한 건 국가 통합의 문제였다. 노예제 존폐 문제는 부차적이었다.

길지 않은 미국 역사에서 트럼프 집권기는 미국의 분열이 더 의도적이고 극단적으로 감행된 때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 나라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부러뜨리려는 힘을 목격했다. 그 힘은 민주주의를 지체시키면서 나라를 무너뜨리려고 했고, 거의 그렇게 될 뻔했다”고 진단한다. 미국은 “모든 문화와 인종, 사람들의 특성과 조건을 배려하는 나라”가 아니라 여기저기 찢겨진 나라가 됐다. 다양성의 용광로는 엎어졌다. 그런데 분열의 힘은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대중을 동원하는 포퓰리즘 정치인에게서만 비롯된 게 아니다. 여기에는 그런 정치인을 따르는 좌절된 대중의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을 키우는 정치적ㆍ이념적 요인, 특히 경제적 요인이 더 큰 힘으로 작동한다. 어느 국가에서나 다른 의견과 시각이 존재한다. 국가는 수많은 이질적 집단과 개인으로 구성된다. 사회적 적대와 갈등이 사회를 움직이는 구성 원리(디폴트)이다. 화해와 타협은 드물게 온다. 여기서 바람직한 정치와 그렇지 않은 정치가 나뉜다. 좋은 정치는 최대한 주어진 사회적 갈등과 틈을 봉합하고 대화의 다리를 놓으려고 한다. 시인도 “승리는 칼날에 있지 않고 우리가 세운 모든 다리에 있”다고 말한다. 나쁜 정치는 트럼프가 그랬듯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분열의 틈새를 더 넓히려 하고 갈등을 부채질한다. 어차피 그렇게 해도 자신을 강고하게 지지하는 열성파는 있다고 믿는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얻은 표가 여실히 보여 준다.

바이든은 미국이 드러낸 깊은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시인도 그런 꿈을 꾼다. “우리는 상처 입은 세상을 경이로운 세상으로 끌어올릴 것입니다. 서부의 황금빛 언덕에서, 선조가 처음으로 혁명을 현실로 보여 줬던 바람 부는 북동부에서, 중서부의 호숫가 도시에서, 태양에 그을린 남부에서 우리는 일어설 것입니다. 다시 세우고, 화해하고, 회복할 것입니다.” 어떻게 미국을 “다시 세우고, 화해하고, 회복할 것”인가? 시인은 예리하게 질문을 제기할 뿐이다. 정치가 답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자들과 화해가 가능한가? 트럼프와 그 추종자들은 그들이 저지른 민주주의 파괴 행위에 대한 법적,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공정과 정의를 먼저 세우지 않으면 화해는 어렵다. 몇몇 미국 언론에서 한국의 적폐청산을 미국이 본받아야 할 사례로 언급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는 단지 미국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거짓 뉴스와 날카로운 편 가르기와 선동에 근거한 타락한 포퓰리즘의 정치가 세계 곳곳에서 득세하고 있다. 하지만 참다운 통합을 이룰 원칙도 포퓰리즘을 돌파하고 생성되는 민주주의다. 젊은 시인이 또랑또랑하게 읊었듯이 민주주의는 일시적으로 후퇴할 수 있으나 누구도 민주주의를 없앨 수는 없다. 트럼프 같은 선동주의자를 만드는 것도, 그를 저지하는 것도 시민이다. “다시는 패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시는 분열의 씨를 뿌리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영원히 연결되고 승리할 겁니다.” 시민의 통치(demos+kratos)를 유일 원리로 삼는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결국 시민의 역량과 수준에서 나온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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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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