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것’에 대해서는 매우 복잡하게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가까운 것이 쌓인 것이다’라고만 말하였습니다. 몇 자 안 되는 간단한 말이지만 먼 것에 도달하는 방법까지도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하 사방의 가없는 공간이나 옛날로부터 흘러온 아득한 시간은 멀고도 먼 것이지만, 이것들은 모두 눈앞의 가까운 것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 내딛는 한 발짝은 지극히 사소하고 작아 보이지만 이것이 쌓인다면 결국 언젠가는 보이지 않는 먼 곳까지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시작이 없는 결과는 없으며, 또 과정이 없는 결과도 없습니다. 시작은 언제나 미미해 보이고 과정은 언제나 고달프지만 그러한 시작과 과정이 없다면 성취도 없을 것입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이 말을 무척 많이 들어왔기에 감동이 아니라 오히려 식상함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공을 초월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참으로 소중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곳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하고, 다음 시간이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시간이 지나가야 합니다. 먼 훗날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지금 이 순간, 이 자리가 결정해 줄 것입니다.
■유성룡(柳成龍·1542~1607)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본관은 풍산. 임진왜란 때 병조 판서와 영의정을 역임하면서 슬기롭게 국난을 극복하였다. 도학과 문장에도 이름이 높았고, ‘징비록’, ‘상례고증’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문집으로 ‘서애집’이 있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www.itkc.or.kr) ‘고전산책’ 코너에서는 다른 고전 명구나 산문, 한시 등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2016-04-04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