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거꾸로 대선승리법/오일만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거꾸로 대선승리법/오일만 정치부 차장

입력 2012-09-14 00:00
수정 2012-09-1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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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만 정치부장
오일만 정치부장
율곡 이이(李珥)는 1569년 갓 등극한 17세 어린 군주(선조)에게 장문의 상소문을 올린다. 조선 건국 177년이 지나 기존 질서가 붕괴되어 과감한 경장(更張)만이 살 길이라는 게 요지였다. 그 유명한 동호문답이다. 그는 조선의 정세를 옛집이 오래돼 대들보가 썩어서 곧 무너지려는 상황으로 진단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설파했다. 어린 선조와 그를 둘러싼 권력 실세들은 “지금은 만백성이 춤을 추는 태평성대”라며 코웃음 쳤다. 꼭 23년 후 조선은 임진왜란의 국난을 맞는다.

이이 선생의 고민은 2012년 대한민국에도 적용된다. 가중되는 서민들의 생활고, 무너지는 중산층, 비생산적인 정치권, 고질적인 지역주의, 절망에 빠진 젊은 세대…. 이것이 우리의 적나라한 현주소다. 단순하게 집을 수리하는 식의 미봉책으로는 출구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 없이 한국병은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중증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1987년 체제 자체의 변혁을 처방으로 내놓는다.

직선 5년 단임제(대통령)와 소선구제(국회의원)로 요약되는 87년 개헌은 엄밀히 말하면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과 군부의 타협물이다. 당시 정치적으로 독재-반독재 구도 속에서 경제적으로는 고도성장을 뒷받침하는 체제였지만 25년이 지나면서 노화현상을 보이며 수명이 다해 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세상은 국내외적으로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 정치권은 ‘유통기간’이 지난 과거 시스템에 매달려 있다. 주체사상을 금과옥조로 되뇌는 북한 김정은 3대 세습 정권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반문하고 싶을 정도다. 우리 역시 이이가 지적한 경장의 시기에 직면한 것이다.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은 지금 반란을 꿈꾸고 있다. 다원적 가치를 추구하는 유권자들에게 이분법적 분열의 논리를 강요하는 정치권에 대한 반감과 혐오는 극에 달해 있다. ‘안철수 현상’이 단적인 예다. 지난해 10월 재보궐선거에서 5% 지지율을 보인 박원순씨를 일약 서울시장으로 만든 것은 유례가 없는 선거 쿠데타였다. 정치 소비자인 국민들의 요구가 외면당하는 상황에서 ‘반란의 대열’에 서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정치 변혁이란 측면에서 “큰 혼란 속에 큰 통치가 가능하다.”는 마오쩌둥의 대란대치(大亂大治)식 반어법이 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맥락에서 12월 대선은 어찌 보면 이미 해답이 나와 있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새로운 정치문법에 충실하게 따르면 된다. 신정치문법은 지난 25년간 작동했던 기존의 정치 행태를 거꾸로 뒤집으면 된다. 멱살잡이 정치에서 상생의 희망 정치로, 눈앞의 표를 손해 보더라도 장기적인 국가 전략을 제시하면 된다. 앞으로 누릴 복지 리스트만 잔뜩 나열하지 말고 국민들의 땀을 요구하는 진정성이 되레 표심을 잡을 것이다. 여야 모두 성장과 복지, 경제 공약 정책에서 변별력이 떨어지는 만큼 솔직한 진정성에 더 무게를 둘 것이다.

네거티브 전략에서 벗어나는 것, 이것도 주요한 키워드다. 여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신상털기식 검증은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가해지는 여당의 ‘유신 공세’ 역시 과거의 덫에 걸려 있는 야권의 밑천만 드러낼 뿐이다. 유권자들은 희망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후보에게 박수를 보낸다. 네거티브 전략은 당장은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마이너스가 되는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다.

‘바보 노무현’이 대권을 거머쥔 결정적인 동기는 누가 뭐래도 그의 도전 정신이었다. 지역구도의 정치 시스템이 시퍼렇게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거꾸로 정신’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꿈꾸는 국민들은 상대방에게 박수를 치면서 ‘나는 더 잘할 수 있다’는 긍정의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에게 찬사를 보낼 것이다. 이것이 국민들을 감동시킨다. 이것이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우리 국민들의 밑바닥 민심이다.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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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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