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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서미의 시청각 교실] 미라클 모닝

[황서미의 시청각 교실] 미라클 모닝

입력 2021-06-01 20:24
업데이트 2021-06-02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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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서미 작가
황서미 작가
동네 미용실은 그야말로 현대판 마을 사랑방이다. 남녀노소 불문, 일단 미용실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주인에게 맡기고 온몸을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라, 입술이 여간 움직움직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떤 이야기라도 나오기 마련이다.

염색하러 가던 날이었다. 옆자리에 한 청년이 머리를 자르고 있다.

“혹시 원형 탈모 있는 것 알았어요?”

미용사 선생님이 물어보신다. 가끔 내게도 원형 탈모가 오면 어떡하나 몇 번 상상해 본 적이 있기에 흘끔 청각이 발동한다. 눈은 책을 보고 있되, 귀는 청년의 원형 탈모로 쫑긋!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러더니 묻는다. 혹시 원형 탈모가 피곤하면 생기는 것이냐고.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오는 거겠죠?”

선생님은 김이 샐 정도로 아주 원론적인 대답을 해주셨지만, 청년은 그 대답을 그냥 흘리지 않는 눈치다.

“아아~ 제가요, 요즘 ‘미라클 모닝’이라는 것을 해요.”

‘미라클 모닝’. 방법인즉슨, 이른 아침이나 아예 깜깜한 새벽으로 시간을 정한 후 멤버 모두 그 시간에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하루를 여는 미션을 수행한다. 이와 관련한 습관들이기 서적은 물론 애플리케이션도 다양하게 나와 있다. 알람은 기본, 아침 명상에 요가까지…. 하루를 길고 알차게 쓰고자 하는 우리 현대인들 노력의 몸부림일까.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이 오전 5시, 6시에 우르르 몰려와서 ‘안녕하십니까!’, ‘굿모닝!’ 이러면서 인사를 해대는데 그 집단적인 부지런함이 감탄스럽기보다는 좀 과장해서 독단의 주체가 없는 ‘독재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잠을 덜 자니까 아무래도 피곤하겠지요? 그래도 제게 뭔가 목표가 생겼거든요. 그 뒤로는 빨리 푹 자고,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졌어요.”

목표. 이 청년에게는 목표가 있구나.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 목표.

예전에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인터뷰를 잠깐 본 적이 있다. 세계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조그만 동양인 여자애가 무대에 올라 무엇을 보여 줄 수 있었겠나. 악보 첫 마디 바이올린 활을 긋기만 하면 다들 숨도 못 쉬고 음악에 빠져들게 해야지, 연주 정말 잘해 내야지 하는 결심에 이를 악물었더란다. 이런 목표가 생기니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도 다음날 빨리 일어나서 연습하고 싶었다는 회고였다.

이렇게 ‘목표’는 앞을 가로막는 뿌연 미래 속, 유일하게 제대로 앞을 걷도록 비추는 ‘불빛’이다. 그 소중한 목표 때문에 아침에 빨리 일어나서 하루를 열고 싶은 이 청년은 당분간 원형 탈모와 함께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만은 분명 듬성듬성 비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나에게는? 이 글을 나누는 오늘 아침이 바로 미라클 모닝이겠다.
2021-06-0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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