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인권 유린에 눈감는 국가인권위/최지숙 정책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인권 유린에 눈감는 국가인권위/최지숙 정책뉴스부 기자

입력 2014-03-13 00:00
업데이트 2014-03-13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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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숙 정책뉴스부 기자
최지숙 정책뉴스부 기자
“그냥 이렇게 살다 죽겠지 싶었는데…, 다시 제대로 살고 싶어졌습니다. 이 나라의 국민으로, 또 사람으로서 작은 목소리나마 내보고 싶어졌습니다.”

얼마 전 잔잔하게 가슴을 적시는 짧은 메일이 왔다. ‘부산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사건’의 피해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27년 만에 피해자 구제 길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는 “내가 받고 싶은 건 돈이 아니라 사과이고, 억울하게 망가진 삶에 대한 이 나라의 이해와 인정”이라고 말했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여전히 악몽 속을 헤매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무엇보다 ‘사회로부터 외면당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고 털어놨다. 끔찍한 과거를 되돌이킬 수는 없지만 죽기 전에라도 진상이 규명되길 바라며 실낱같은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치가 떨리는 경험에 아직도 깜짝 놀라곤 한다.

그러나 애끊는 피해자들과 달리 그동안 정부는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서로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했다. 특히 이 같은 인권유린 사건에 어느 곳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피해자 구제를 촉구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현판에 부끄럽게도 등을 돌린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 1월 관련 진정을 각하한 뒤 사건을 인권정책과로 보내 정책적 대안을 검토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실상은 인권위 전체를 통틀어 단 한 명의 담당자만이 이 사건을 도맡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3월에 예정됐던 관련 토론회조차 오는 6월로 미뤄졌다. 내부적으로 “시급한 사안이 아니지 않으냐”며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한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솔직히 요즘 인권위 전반적으로 눈에 보이는 활동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사건은 개입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나지막이 씁쓸한 우려를 전했다.

인권위는 올해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고 내년 실태 조사를 거쳐 2016년쯤에야 입법 또는 제도관행 개선을 권고하겠다고 한다. 이미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달에 특별법이 발의되고 실태조사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참으로 뒷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인권위가 외면하는 인권유린 사건을, 도대체 어느 부처가 먼저 나서서 적극 움직이려 할까. ‘인권위’로서 진정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그 이름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때다.

truth173@seoul.co.kr
2014-03-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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