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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왕따 외교관/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왕따 외교관/최광숙 논설위원

입력 2010-12-08 00:00
업데이트 2010-12-0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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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지난 2001년 3월 4명의 모스크바 주재 미국 외교관 명단을 미국 측에 건넸다. “다음 달 6일까지 러시아를 떠나라”는 최후통첩이었다. “이들이 ‘외교관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비우호적인 활동을 했기에 추방한다.”고 했다. 미국이 첩보활동을 들어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 조치하자 러시아가 맞불작전을 폈던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간의 ‘스파이전쟁’ 이면에는 이처럼 외교관들이 등장한다.

과거와 달리 스파이들은 정보요원뿐 아니라 외교관 등 다양한 직업으로 위장해 활동을 한다. 어디까지가 첩보활동인지, 외교활동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져 점차 외교관들의 활동반경도 넓어지고 있다. 정보수집 활동도 과거 적국의 군사정보 수집에 머물지 않고 산업과 경제분야 등 전방위로 확대돼 자칫 첩보활동으로 오인될 소지도 많아졌다.

지난 7월 한국과 리비아의 외교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았던 것도 리비아 주재 외교관의 활동이 발단이 됐다. 리비아의 금기사항인 카다피 국가원수 일가에 대한 첩보활동을 했다는 게 그쪽 주장인데, 도를 넘은 외교 활동은 상대국과의 외교관계를 파국으로 몰 수 있는 중대사안이 된다. 최근 폭로 사이트 ‘위키 리크스’의 미국 기밀외교 전문이 공개된 이후 전세계에 불어닥친 후폭풍을 보면 미국이 딱 그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 같다.

미국 외교관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져 ‘왕따’ 신세가 됐다고 한다. 은밀하게 속삭인 비밀스러운 얘기들이 여과 없이 깨알처럼 미 행정부에 보고된 것을 보면서 누군들 미 외교관들과 대화를 나누고자 하겠는가? 미국은 “정책 형성을 위한 정보수집”이라고 주장하지만, 문건들은 외교관들의 통상적인 외교활동 범위를 넘어선 ‘스파이 활동’과 유사한 첩보활동이 포함돼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생체정보까지 수집토록 한 비밀명령을 외교활동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미 행정부가 ‘왕따 외교관’들에 대한 대폭 물갈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설 자리가 없어진 이들을 자진 소환하겠다는 셈이다. 상대국 지도자를 나쁘게 평가한 대사들이 우선 대상이 될 전망이다. 벌써 독일의 자민당 의원들은 메르켈 총리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한 독일 주재 미국 대사의 해임을 미국 정부에 요구했다고 한다. 이번 파문을 보면서 17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외교관이던 헨리 워턴 경의 말이 생각난다. “외교관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도록 외국에 보내는 가장 정직한 사람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0-12-0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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