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 중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있다. 최근 한국거래소를 비롯한 공공기관장 인선 문제를 보면 이 우화가 떠오른다. 지난 13일 이정환 거래소 이사장의 전격 사퇴를 계기로 정부의 사퇴 압력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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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훈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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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훈 경제부 기자
현재 공공기관장을 뽑을 때는 공모제라는 형식을 따른다. 이는 공개적으로 일정 자격을 갖춘 인물들의 신청을 받아 가장 적합한 인물을 가려내는 방식이다. 지난 2004년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을 고쳐 의무화됐다. 기존 임명제가 갖고 있던 낙하산 인사 등 잡음을 없애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다.
이 전 이사장은 이런 과정을 정석대로 밟아 선임됐다. 공공기관장 대다수가 친정부 인사들로 채워지는 상황에서 유력 후보를 밀어내고 임명된 ‘희귀 사례’였다. 하지만 이는 이 전 이사장이 3년 임기의 절반가량을 남겨 두고 중도 낙마하는 원인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게다가 거래소가 이 전 이사장의 후임에 대한 공모 절차에 착수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부 측에서는 벌써부터 어느 인물이 적합하다는 등의 얘기가 흘러나온다.
정부가 단순한 훈수 차원을 넘어 공공기관장 인사를 사실상 조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이유다. 이 경우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공모제로 포장한 임명제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모제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할 바에야 아예 과거처럼 임명제로 전환하는 게 낫다. 이렇게 되면 국민 입장에서는 정부와 해당 공공기관에 책임이라도 물리기 쉽다. 국민들은 세금이 직·간접적으로 들어가거나,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잖은 공공기관이 제대로 운영되기를 바랄 뿐이다.
과거 회귀가 어렵다면 공모제라는 형식에 걸맞은 내용으로 채워야 한다.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본질을 숨긴 가식은 오래가지 못한다. 공직 사회든 민간 기업이든 출신은 중요하지 않다. 해당 공공기관이 직면한 최우선 현안을 효과적으로 풀어낼 전문성이 더욱 중요하다. 이런 인물이 중용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