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여백/최태환 논설실장

[길섶에서] 여백/최태환 논설실장

입력 2008-05-21 00:00
수정 2008-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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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에 있던 친구가 얼마전 물러났다. 정권이 바뀌면서, 불신임을 받은 셈이다. 곁눈질 없이 살아온 그다. 조직 내부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다. 회한이 없을 리 없다. 그럼에도 유유자적했다. 산하기관 자리를 제의 받았지만 거절했다. 대학강의를 준비중이라 했다. 산을 내려오니, 사람들이 제대로 보이더라고 했다. 내 안의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고 했다.‘너의 삶도 되돌아보라.’는 가르침으로 들렸다.

선승 무비가 생각났다. 그는 이미 있는 것에 눈을 뜨라고 했다. 그러면 고통과 절망에 있어도 ‘나’가 상하지 않는다고 했다. 삶도, 죽음도 가뿐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낸 책에서 ‘돌아갈 길을 잃는다’는 중국 선시를 소개했다.‘돌아감’은 원래 없단다. 늘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부처를 몸 밖에서 찾지 말라’던 법전 종정의 석탄일 법어와도 통하는 것 같다. 미망을 좇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본다. 나를 들여다보면, 나를 놓아주는 여유도 생기지 않을까. 누군가가 그랬다. 새 한 마리 그려 넣으면 여백이 모두 하늘이라고.

최태환 논설실장 yunjae@seoul.co.kr

2008-05-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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