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미얀마, ‘이 한 장의 사진’/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옴부즈맨 칼럼] 미얀마, ‘이 한 장의 사진’/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입력 2007-10-02 00:00
수정 2007-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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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가장 큰 뉴스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승려와 민간인을 미얀마 군부독재정권이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다. 추석 다음날인 26일 옛 수도 양곤에서 수만명의 승려와 시민들이 가두시위를 벌였고, 미얀마 군·경은 최루탄과 실탄을 발포하여 적어도 10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서방의 외교소식통 등에 따르면 사망자의 수는 수십명에서 이백여명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독재정권에 맞서서 미얀마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평화적인 시위와 이를 무력으로 탄압하는 현장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이 금요일인 28일자 조간에 일제히 실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사진은 양곤에서 로이터가 전한 사진이다. 이 사진은 경찰과 군대를 피해 고개를 숙이고 달아나는 민간인을 곤봉을 든 경찰과 자동소총을 겨눈 군대가 쫓는 장면을 담고 있다.

붉은 색의 커다란 철제 시설물과 변전시설을 에워싼 철망을 배경으로 시위대가 잃어버린 샌들이 흩어진 도로의 오른쪽 하단에 일본인 기자인 나가이 겐지가 쓰러진 채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이 있고, 그의 바로 옆에는 한 병사가 그를 향하여 자동소총을 겨누고 있다. 나가이 기자는 바로 이 장면에서 가슴을 관통한 한 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숨을 거두었다.

로이터가 전한 ‘이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에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다.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남녀노소의 민간인이 대나무 방패와 곤봉을 든 경찰과 자동소총을 겨누는 군대를 피해 달아나는 장면은 폭압정권의 실상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달아나는 시위대 군중 속의 한 남자가 달려오는 곤봉을 든 경찰이나 자동소총을 겨눈 군인이 아닌 길바닥에 쓰러진 기자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돌아보는 모습도 보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사진은 28일자 조간에 일제히 실렸다. 그러나 이 사진을 1면 머리로 실은 다른 신문과 달리 서울신문은 국제면인 16면에 게재하였다. 게다가 카메라를 든 채 도로에 쓰러진 기자의 모습과 그 기자를 향해 자동소총을 겨누고 있는 미얀마 병사의 모습을 담은, 가장 극적인 사진이 아닌 이미 숨을 거둔 것으로 보이는 기자를 병사들이 지나쳐서 시위대를 향해 쫓아가는 모습이 담긴 연속 촬영의 다음 장면의 사진을 게재하였다. 이 장면도 물론 중요하지만 긴박한 현장의 생생한 순간을 담은 가장 극적인 사진은 분명 아니다.

‘이 한 장의 사진’에 대한 28일자의 사진 설명도 미흡하였다. 서울신문의 사진설명은 “미얀마 반정부 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27일 군·경이 옛 수도 양곤 중심부에서 수천명의 시위대에 발포, 해산하는 과정에서 부상당한 한 남자가 길위에 누워 있다.”고 전했다. 같은 사진을 게재한 한 조간은 “오른쪽에 쓰러진 채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사람이 일본인 기자 나가이 겐지다. 그는 결국 숨졌다.”고 현장상황을 인적 사항과 함께 전하며 쓰러진 사람의 생사를 확실하게 보도하였다. 물론 또 다른 조간은 같은 사진에 대해 “오른쪽에 부상당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 시위자가 힘없이 길 위에 누워있다.”는 잘못된 사진설명을 붙이기도 하였다.

서울신문은 29일 토요일자 지면에 나가이 겐지가 카메라를 든 채 쓰러져 있고 미얀마 병사가 자동소총을 겨누는 극적인 장면의 사진을 다시 게재하고 상세한 정황 설명과 함께 “아무도 안 가는 곳 누군가는 가야” 한다고 했던 나가이 겐지의 기자정신을 기리는 도쿄특파원의 박스기사를 11면 톱으로 실었다. 금요일자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한 후속보도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감이 든다.

나가이 겐지 기자와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모든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긴박한 상황에서도 ‘이 한 장의 사진’을 촬영한 기자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2007-10-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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