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성폭력 피해자’ 아닌 ‘생존자’/유지혜 기획탐사부 기자

[오늘의 눈] ‘성폭력 피해자’ 아닌 ‘생존자’/유지혜 기획탐사부 기자

입력 2007-02-23 00:00
수정 2007-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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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엽기스러운 사건이라기보다 원치 않지만 우리의 삶으로 침입한 세균이나 칼에 베인 상처 같은 것이다. 그래서 싸우고, 마음 아프고, 상처도 남는다. 하지만 그 사건이 나의 모든 것을 뒤흔든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9년 동안 친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이 여성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 ‘나눔터’에 ‘水(수)’라는 필명으로 수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는 “저런 일 당하면 살기 어렵겠다, 정신이 이상해지겠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편견이 싫다. 전문가들도 성폭력을 당하면 정신병자가 된다고 하는데, 그 말은 정말 싫다.”고 했다.

水처럼 성폭력 피해를 당한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당했다’는 사실 자체뿐만이 아니다. 그 상처가 평생 아물지 않은 채 그들을 괴롭힐 것이라는 시선은 그들을 두 번 죽인다. 본인이 아무리 극복했다고 해도 가족들조차 “겉으로만 저렇지, 속으로는 평생 갈 거야.”라고 안쓰럽게 바라본다.

기자도 초등학생 때 길을 가다 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창문 여는 것을 도와달라고 해 순진하게 따라갔다가 그가 내 몸에 손을 대자 갑자기 뭔지 모를 기분 나쁜 느낌이 들어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그게 성추행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물론 이런 아픈 기억은 잊지 못한다. 그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 상처가 지금도 생생해 괴롭고 힘들지는 않다. 기자도, 다른 피해자들도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성폭력 피해자라는 말 대신 ‘생존자’라는 말을 쓴다. 당하기만 하고 보호받아야만 살 수 있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피해를 극복할 힘을 지닌 당당한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정말 이들이 끝내 ‘생존’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의 평생이 난도질당한 것이라는 통념을 버리고 그 힘을 믿어줘야 한다.



유지혜 기획탐사부 기자 wisepen@seoul.co.kr
2007-02-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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