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 한국 고대사의 큰 줄기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과정에서 왜곡된 주장이 적잖게 나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중국 은(殷)나라의 현인 기자(箕子)가 동쪽으로 와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설이다. 이는 단군조선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한국사가 중국의 영향 아래 시작됐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즉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적극 주장하던 타율성 이론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기자란 역사상 어떤 인물인가.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저작에 등장하는 기자는, 은나라의 마지막 왕이자 폭군인 주왕(紂王)에게 실정을 간하는 어진 신하이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가 조선 땅으로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전국시대와 통일왕조 진(秦)을 거쳐 한(漢)나라가 들어선 뒤에야, 은나라가 망하자 기자가 조선 땅으로 망명해 나라를 세웠으며 이를 중국 왕조가 승인했다는 주장이 덧붙는다. 이처럼 새 기록이 나오는 이유는, 한나라가 중화적(中華的) 세계관을 내세워 천하가 중국 통치권임을 강변하면서 주변국 역사를 제 입맛대로 조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국내에서는 ‘기자조선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지성 최치원은 기자가 조선으로 건너와 교화를 베풀었을 가능성은 인정했지만 나라를 세우지는 못했다고 보았다. 기자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고려 중기부터 기자는 급격히 각광을 받게 된다. 한국의 역대 왕조는 애초에 유학을 기본 이념으로 건설됐다는 정치적 선전의 상징으로 이용된 것이다. 기자에 대한 숭모는 조선조 들어 더욱 강해졌다.
현재 한국 사학계는 기자조선을 대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한나라보다 앞선 시대의 중국 서책에 이미 조선이라는 국가가 등장하지만 기자와 연계시킨 기록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군조선-위만조선-부여 및 삼국으로 이어지는 한국 고대사에서 기자조선을 따로 구분지을 시대가 기록상이건, 고고학상이건 존재하지 않기도 하다. 중요한 건 중국 사학계가 어떤 궤변을 늘어놓느냐가 아니다. 그 왜곡된 역사 서술을 언제라도 깨부술 만큼 우리 고대사 연구가 두터워져야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기자란 역사상 어떤 인물인가.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저작에 등장하는 기자는, 은나라의 마지막 왕이자 폭군인 주왕(紂王)에게 실정을 간하는 어진 신하이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가 조선 땅으로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전국시대와 통일왕조 진(秦)을 거쳐 한(漢)나라가 들어선 뒤에야, 은나라가 망하자 기자가 조선 땅으로 망명해 나라를 세웠으며 이를 중국 왕조가 승인했다는 주장이 덧붙는다. 이처럼 새 기록이 나오는 이유는, 한나라가 중화적(中華的) 세계관을 내세워 천하가 중국 통치권임을 강변하면서 주변국 역사를 제 입맛대로 조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국내에서는 ‘기자조선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지성 최치원은 기자가 조선으로 건너와 교화를 베풀었을 가능성은 인정했지만 나라를 세우지는 못했다고 보았다. 기자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고려 중기부터 기자는 급격히 각광을 받게 된다. 한국의 역대 왕조는 애초에 유학을 기본 이념으로 건설됐다는 정치적 선전의 상징으로 이용된 것이다. 기자에 대한 숭모는 조선조 들어 더욱 강해졌다.
현재 한국 사학계는 기자조선을 대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한나라보다 앞선 시대의 중국 서책에 이미 조선이라는 국가가 등장하지만 기자와 연계시킨 기록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군조선-위만조선-부여 및 삼국으로 이어지는 한국 고대사에서 기자조선을 따로 구분지을 시대가 기록상이건, 고고학상이건 존재하지 않기도 하다. 중요한 건 중국 사학계가 어떤 궤변을 늘어놓느냐가 아니다. 그 왜곡된 역사 서술을 언제라도 깨부술 만큼 우리 고대사 연구가 두터워져야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6-09-0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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