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슬픈 월드컵/임병선 국제부 차장

[데스크시각] 슬픈 월드컵/임병선 국제부 차장

입력 2006-06-16 00:00
수정 2006-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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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월드컵 축구를 보면서 아프리카 팀들이 나올 때마다 거리에서 축구하던 아이들 모습이 항상 겹쳐집니다.”로 시작하는 이메일 잘 받았습니다.

우리 대표팀이 토고를 꺾던 13일 밤 역전골이 터진 순간 저도 한국 사람인지라 환호하며 펄쩍 뛰어올랐지만, 곧 가슴에 묵직한 것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껴야 했지요. 돈을 밝힌다고 지청구를 들은 토고 감독이나 선수들이 안돼 보여서가 아니었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배당금을 한푼이라도 더 남기려 안간힘을 쓰는 토고축구협회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1300달러(약 120만원)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 태어난 죄로 골목이나 거리에서 공을 굴리고 차는 것말고는 어느 것도 기대할 게 없는 토고 아이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였습니다.

김형과 함께 서부 아프리카의 가나와 시에라리온을 돌아다니던 열흘간 차창으로 건너다 보이던 살풍경한 거리, 카메라를 들이대면 금세 돌이라도 날아올 것 같은 팽팽함, 하릴없이 앉아있다 경미한 교통사고에도 우∼ 몰려와 주먹을 날릴 것 같은 일촉즉발의 공기를 기억하지요?

우리 돈으로 300원쯤 내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볼 수 있으니 ‘텔레비전 카페’에 오라고 적어놓은 낡은 칠판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의 유일한 위안이자 탈출구가 축구란 것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던 거지요.

김형!

그래도 근처 나라들 가운데 가장 잘 나간다는 가나에서 우리들은 ‘이런 나라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까?’ 의문이 떠올랐지만 차마 입밖으로 내지 않았지요.

그러다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 공항에서 헬리콥터로 갈아 타기 위해 격납고로 이동할 때 짐꾼들이 보여준 발작적인 신경전과 승강이를 지켜보면서 이같은 의심은 거의 공포로 발전했지요. 밤거리에서 낯선 이들을 향해 겨눠지던 검은 눈망울들은 또 어떻고요?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열흘 전 프리타운 한국 식당의 강성구씨가 보낸 이메일 편지가 떠올랐어요. 강씨는 “내전으로 팔다리와 가족까지 잃었지만 축구라는 이름으로 한데 어울려 씩씩하게 생활하는 청년들”이 준비하는 또 다른 월드컵을 소개하고 있었어요.

지난해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장애인축구대회에서 8개국 가운데 4위를 차지했던 시에라리온 외다리축구단(SLASC·한겨레신문 제공)이 10월 두번째 대회를 준비하는데,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도울 방법이 없겠느냐는, 좀 알아봐달라는 거였지요.

김형!

우리는 검은 대륙의 가뭇없는 희망을 본 죄(?)로 ‘월드컵 채무’에 시달리는지 모릅니다.15일 새벽 사우디아라비아와 승부를 가리지 못한 튀니지까지, 가나와 토고, 코트디부아르, 앙골라 등 이 대륙의 5개 출전국이 1차 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마저 우리를 ‘감정의 과잉’에 허우적대게 하는지 모릅니다.

월급 통장에서 2만원씩 떼내 가나 아동매매 피해자들의 중학교 학비를 보조하자는 제안, 시에라리온 내전 부상자 실태 보고서 작성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제안에 똑 떨어지는 대답을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하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우리 모두 조금씩 내디뎌 봅시다. 우선 사내 전자게시판에라도 취지를 설명하고 동료들을 설득해보려 합니다. 몇몇 지인에게도 얘기해 동의를 구해놓고 있기도 합니다. 단박에 굵직한 돈 보내는 것도 좋지만, 외려 많은 이의 자그마한 정성을 모으는 것이 취지에도 맞겠지요.

임병선 국제부 차장 bsnim@seoul.co.kr
2006-06-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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