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영안실/육철수 논설위원

[씨줄날줄] 영안실/육철수 논설위원

육철수 기자
입력 2006-06-05 00:00
수정 2006-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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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사 부조금의 흐름에는 흔히 인생이 들어있다고 한다. 젊은 날에는 친구 결혼식 참석이 유독 많은 편이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그 자녀의 백일·돌잔치가 많고, 또 시간이 지나면 그 부모들의 부고장이 잇따라 날아든다. 그런 다음 친구 자녀들의 결혼식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늘그막엔 친구 상가를 자주 찾게 된다. 그래서인지 부조금에 인생이 담겼다는 말은 누가 지어냈는지 참으로 그럴싸하다.

그런데 부조금 순서가 좀 뒤바뀌면 혼란스럽기도 하거니와, 때론 몇배나 더 큰 슬픔을 맛보아야 한다. 노소부정(老少不定)이라 했듯, 사람의 명(命)은 알 수가 없어 나이 들었다고 반드시 먼저 죽는 게 아니어서다. 친구의 어린 자녀가 먼저 운명을 달리했을 때, 자녀의 혼인도 치르지 못한 친구가 한창 나이에 훌쩍 세상을 떠났을 때,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었거나, 평생 고운 정 미운 정을 나눈 배우자를 먼저 보낼 때 그 슬픔의 크기를 가늠하기란 어렵다. 이럴 때 망인(亡人)과 맨정신으로 영별(永別)할 강심장을 가진 이는 드물 것이다.

이렇듯 갖가지 사연을 안고 있을 병원 영안실은 산 자가 죽은 자를 가슴에 묻는 이별의 장소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숙연함을 가르쳐주는 ‘인생 배움터’이기도 하다.“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인간의 고뇌를 알 수 있다.”고 한 괴테의 통찰과,“인간은 죽음을 향해 있는 존재”라고 한 하이데커의 철학을 몽매한 생존자들이 그 분위기만으로도 배울 수 있어서다. 그래서 영안실은 유족을 위로하고 망인과 영원히 작별하자면 때론 통음과 밤샘도 불가피한 곳이 아닌가 싶다.

지난 10년간 새 장례식장문화를 내세워 영안실에서 술·담배·고스톱·밤샘·음식반입 등 ‘5不 조문’을 시행해 온 세브란스병원이 운영방침의 변경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규제가 너무 심해 조문객들의 불평을 들어온 터라,2008년쯤 새로 지을 영안실에서는 우리식 장례문화의 일부 수용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분향소 운영실적의 저조도 고려됐다고 한다. 어쨌거나 세브란스병원은 장례문화 개선에 기여한 측면도 적지 않다. 허용이든 규제든 영안실은 우선 혼령이 편해야 하고, 산 사람끼리 슬픔을 나누는 공간이다.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망인에 대한 마지막 예의가 아닐까.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06-06-0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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