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한국외교의 현주소/박정현 정치부 차장

[데스크시각] 한국외교의 현주소/박정현 정치부 차장

입력 2006-04-26 00:00
수정 2006-04-26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군사력뿐 아니라 외교에 의해서 나라의 흥망이 결정되기도 한다. 중국의 송나라와 요나라가 맺은 ‘단연지맹’은 실패 외교의 본보기로 꼽힌다.

송의 진종은 1004년 요나라의 침입을 받자 직접 정벌에 나서지만 요나라가 화평을 요구하자 무기를 내려놓고 덜컥 동맹을 맺는다. 오랑캐라면서 얕보던 요나라를 형제의 나라로 부르고, 매년 비단과 은을 상납한다. 이런 단연지맹이 나온 뒤 금나라는 요나라와 송을 차례로 멸망시킨다. 청나라는 초기에는 나라의 문을 걸어잠그는 쇄국정책을 펴다가 나중에는 “이적이 될지언정 집안의 노예는 되지 말자.”는 극단적인 외교정책을 폈다. 유연하지 못한 외교는 결국 망국으로 이어졌다.

단연지맹에 11년 앞서 고려가 보여준 외교는 성공 외교의 대표적 사례다. 거란은 낙타 50필을 사신과 함께 보내 친선을 요구하지만, 고려는 오히려 낙타를 굶겨죽인다. 발끈한 거란 장수 소손녕은 8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지만, 넓은 대지에서 펼쳐지는 전투에 익숙한 거란의 기마병은 산악에서 맥을 추지 못한다. 그래서 고려와 거란은 협상을 맺게 되고, 서희는 거란에 조공을 하려 해도 여진이 가로막고 있어 갈 수 없었다는 논리로 설득한다.

고려는 거란에 조공을 더 많이 하는 대신에 청천강에서 압록강까지의 땅을 받는다. 이른바 서희의 담판외교다. 담판외교가 성공한 데는 뛰어난 화술도 작용했겠지만, 거란의 고려 침공 목적이 송을 견제하려는 데서 비롯됐다고 본 서희의 탁월한 국제정세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독도대응 방침을 전면 재검토하고 주권수호 차원에서 정면 대응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25일 특별담화는 사실상 선전포고에 가깝다. 경제적 이해관계와 문화 교류까지 거론한 것은 경제적·문화적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배수진으로 받아들여진다. 한·일관계는 수교 41년 사상 최악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수교 이후 최대의 사건은 이미 지난주에 일본이 저질렀다. 일본은 그동안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역사를 왜곡하면서 우리와 입싸움을 그치지 않아 왔다. 시마네현의 독도 조례 제정도 중앙정부의 묵인 아래 진행된 지방정부의 ‘행위’쯤으로 치자. 해상보안청의 탐사선이 도쿄항을 떠나 독도를 코앞에 둔 사카이 항에 정박한 일은 일본의 말이 처음으로 ‘행동’으로 나타났다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독도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를 놓고 일본의 연말 선거용이라는 등의 관측이 분분하다. 하지만 최근의 동북아 정세를 살펴보면 단순한 국내 정치용이란 해석에는 의문을 가져볼 법하다. 담화를 보는 국민들은 속이 후련하다고 느끼겠지만, 감성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동북아 정세는 요동치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러시아와도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과는 댜오위타이(센카쿠 열도)섬, 러시아와는 북방 4개섬을 놓고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100여년전 구한 말 열강이 각축을 벌이던 혼란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일본의 중국 견제를 놓고 ‘제2의 청일전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일본과 미국은 올해 초 자위대와 미 해병대의 연합상륙작전을 벌이면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테면 해양세력의 연대요, 강화다.21세기 세계질서의 최대 관심은 해양세력인 미국과 대륙세력인 중국의 충돌이라고들 한다.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솟아오르는 중국이 아시아에서 미국을 밀어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리라고 예고한다. 옛 소련에 했던 것처럼. 중국이 북한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신밀월관계는 14년전 우리나라와 중국이 수교할 당시와 분명 다른 기류다. 우리는 이런 틈바구니에 서 있고, 한·미 동맹에 금이 가 있다는 얘기는 새롭지 않다. 얽히고설킨 동북아의 역학 구도에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냉정하게 둘러봐야 할 시점이다. 단연지맹의 우를 되풀이할지, 서희의 지혜를 본받을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박정현 정치부 차장 jhpark@seoul.co.kr
2006-04-26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