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학교/김용택 시인·교사

[문화마당]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학교/김용택 시인·교사

입력 2005-11-03 00:00
수정 2005-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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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안개가 앞산 중턱을 하얗게 가리고 있다. 해다 뜨면서 안개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이내 사라지고 학교 둘레의 단풍 고운 산들이 장엄하게 드러난다. 산을 감고 돌아가는 강물에서도 물안개가 서서히 사라진다. 아침 햇살에 드러난 단풍 물든 산이 눈이 부시게 빛난다.

나는 내가 태어나 자라고 졸업한 곳에서 지금까지 초등학교 선생을 하며 지내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가 군 단위의 한 학교에서 5년 동안 근무하면 다른 학교로 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근무하는 이웃학교로 가서 1년 있다가 도로 집이 있는 이 학교로 오곤 했다.

그리고 5년을 근무하고 또 다른 이웃학교로 가서 1년 있다가 다시 오기를 반복했는데, 지금 여섯번째로 다시 덕치초등학교로 와서 4년째 근무중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야, 김용택 선생은 인사이동 때 누가 봐 주나보다.”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5년을 근무하면 인사 이동시 점수가 높아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인사 원칙을 나는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다시 1년을 근무하고 덕치 초등학교로 올 때도 별 문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전주에서 통근거리가 멀어 덕치초등학교로 오려고 하는 교사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지원만 하면 되었다.

나는 인사이동을 정말 싫어한다. 제발 이 학교에만 있으면 좋겠는데,5년 후에 다시 옮길 생각을 하면 그 때부터 마음이 심란해지고 걱정이 된다. 우리 교육에 큰 지장이 없고 인사이동에 별 파문을 끼치지 않는다면 제발 이 학교에 정년 때까지 있게 좀 봐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내가 이 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교실이 없었다. 전쟁으로 교사가 다 소실되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운동장 가에 있는 아름드리 벚나무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우린 공부를 하다가도 집으로 갔다. 공부 시간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면 우리들은 얼마나 신이 났던가.

2학년 때 군인들이 벽돌을 찍어 교실을 지어 주었다. 내가 졸업할 때 학생 수는 모두 150명 이쪽저쪽이었을 것이다. 그때 우리 반 전부 해야 21명이었으니까.

이 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1972년도에 모교 선생이 되어 왔다. 그때 학생 수가 700명 정도 되었다. 나는 우리동네 아이들과 함께 걸어서 학교를 오갔다.

내 동생들도 이 학교를 다녔다. 우리동네에서 학교까지는 40분쯤 걸리는 강길이었다. 흘러오는 강물을 거슬러 학교에 갔다가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집으로 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강길은 나의 훌륭한 ‘시인학교’였다. 그 학교 길에서 아이들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어느 해 그 길에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길도 논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내가 처음 이 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렇게나 꽃을 아름답게 피우고, 그렇게나 살구가 많이 열리던 살구나무가 늙어 이제 봄이 오면 드문드문 꽃을 피우고 살구도 내가 셀 수 있을 만큼 적게 열린다. 나도 그 살구나무와 함께 이 학교에서 평생을 보내며 늙어간다는 생각을 그 살구나무 살구꽃을 보며 느끼는 것이다.

지금 나는 2학년 아이 셋을 가르친다. 이 아이들의 부모들도 가르쳤다. 학생수가 100명 이하인 시골 학교를 통폐합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

너무 사사로워서 사람들이 욕을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정년을 할 때까지 나는 덕치초등학교가 존립할까 그게 걱정이다. 초등학교 학생으로 6년, 교사로 26년, 내 일생이 저 산과 저 물과 저 살구나무와 함께 지금도 여기 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학교, 덕치초등학교.

김용택 시인·교사
2005-11-0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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