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자녀의 교육에 빗대 엄마들을 묘사한 글을 읽고 가가대소한 적이 있다.
엄마들을 풍자적으로 분류했는데, 그것들은 이렇다.‘밀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팍팍 밀어붙이는 엄마,‘뛰모’는 자녀와 예습·복습하며 함께 뛰는 엄마, 그리고 ‘지모’는 공부하는 아이를 옆에서 지켜주는 엄마,‘주모’는 아이의 공부와 상관없이 주무시는 엄마이다.
아내는 이 글을 보더니 주모에 가깝지만 자기 전에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축이니 ‘기모’로 별도 분류함이 옳다고 우긴다.
주위에서 뛰모와 밀모의 역할을 모두하는 ‘뛰밀모’들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아침부터 학교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를 차에 태워 서너 군데의 학원을 전전하는 ‘극성’ 엄마들이다. 아이들에게 놀 틈을 안 주며 볶아대는 엄마들이기도 하다. 지모는 소리 소문없이 아이의 공부를 챙기는 탓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주모 역시 스스로 까발리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다.
요즘 아내는 ‘뛰밀모’ 쪽은 아예 엄두조차 못내고 지모 쪽으로 약간 방향을 튼 것 같다. 물론 기모의 역할에는 변함 없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엄마들을 풍자적으로 분류했는데, 그것들은 이렇다.‘밀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팍팍 밀어붙이는 엄마,‘뛰모’는 자녀와 예습·복습하며 함께 뛰는 엄마, 그리고 ‘지모’는 공부하는 아이를 옆에서 지켜주는 엄마,‘주모’는 아이의 공부와 상관없이 주무시는 엄마이다.
아내는 이 글을 보더니 주모에 가깝지만 자기 전에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축이니 ‘기모’로 별도 분류함이 옳다고 우긴다.
주위에서 뛰모와 밀모의 역할을 모두하는 ‘뛰밀모’들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아침부터 학교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를 차에 태워 서너 군데의 학원을 전전하는 ‘극성’ 엄마들이다. 아이들에게 놀 틈을 안 주며 볶아대는 엄마들이기도 하다. 지모는 소리 소문없이 아이의 공부를 챙기는 탓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주모 역시 스스로 까발리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다.
요즘 아내는 ‘뛰밀모’ 쪽은 아예 엄두조차 못내고 지모 쪽으로 약간 방향을 튼 것 같다. 물론 기모의 역할에는 변함 없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2005-10-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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