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반미와 우리문화/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 교수

[문화마당] 반미와 우리문화/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 교수

입력 2005-09-01 00:00
수정 2005-09-0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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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반미 운동은 사회의 전반적인 추세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북한보다 미국을 더 싫어한다는 보고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그동안 세태가 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지식인 사회에는 미국에 대해서는 일단 비판하고 반대하는 게 지성인처럼 여겨지는 풍조까지 만연되어 있다.

나는 이런 반미운동을 볼 때마다 심정적으로는 동의하면서도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일들을 살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는 북한을 포함해서 북쪽 지방의 군사정보 가운데 상당 부분을 미국에서 얻는 나라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서 소형 잠수함이 내려와도 미국서 알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모른단다.

그러니까 미국이 없으면 군사적으로 우리는 매우 취약해지는 것이다. 이 사정은 경제나 정치면에서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우리가 이라크에 파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우리에게 생명줄과도 다름없는 석유줄을 미국이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작부터 한국이 정치·경제·군사적인 면에서 미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물질적인 것은 미국에 예속되어 있지만 정신만은 뺏기지 말자고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그런데 주변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전 국민이 광분하는 영어 배우기 붐부터 해서 TV를 보면 청소년들이 즐기는 노래와 춤이 모두 미국 것이다. 대학도 영어 강의 못해서 안달이 났다. 사립 명문대라는 한 대학을 보면 몇 년 내에 전 강의의 반 이상을 영어로 하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게다가 종교도 미국서 수입된 종교(개신교)가 제일 인기가 좋다. 교회에 간 청소년들은 찬송도 랩으로 한다는데 그 찬송의 내용은 미국의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처럼 아주 보수적이란다. 그리고 여전히 한국의 청소년들은 가장 이민 가고 싶은 나라로 미국을 단연코 수위로 뽑는다.

그러니까 한쪽에서는 미국이라면 치를 떨며 싫어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이 우리의 어버이 국가처럼 된 양극화의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양쪽이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반미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정말 반미하고 싶으면 그렇게 드러내놓고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공연히 미국 내에 반한분자들만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편 무조건 미국을 숭앙하는 태도에 문제가 더 많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든 자국 문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수많은 예를 들 수 있지만 우선 한두 가지만 들어보자.

가령 한국인들은 항상 한글이 세계최고의 문자라고 하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지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내가 아는 한 국어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빼고 한글의 우수성을 아는 사람은 전무했다.

음식도 그렇다. 우리 청소년들은 피자나 햄버거는 다 좋아하면서 김치 안 먹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김치가 얼마나 훌륭한 식품인지 아는 한국인도 거의 없다. 우리 음식은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채식과 육식의 비율이 8:2라는 황금비율이기 때문이다. 다이어트하고 싶은 사람은 그저 한식만 먹으면 된단다. 그런 우리 음식이 지금 식탁에서 경원시되고 있다.

이게 다 우리 것은 촌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그래 놓고 입으로만 숭미나 반미를 외치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을 숭앙하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성조기를 태우며 하는 반미 시위 이전에 우리 문화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미국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 교수
2005-09-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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