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담배가게 할머니/이호준 인터넷부장

[길섶에서] 담배가게 할머니/이호준 인터넷부장

입력 2005-05-02 00:00
수정 2005-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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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쎄필드 한 갑 주세요.” “뭐? 애쌔…뭐라고?” “필드요.” “자, 골라봐. 이거?” 담배가게 할머니는 오늘도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담배 서너 갑을 한꺼번에 들고 하나를 가리켜 보지만, 다른 걸 집는 손이 야속하다.

언제부터인가 담배에서 한글을 찾기가 별을 따기보다 어려워졌다.‘TIME’이나 ‘THIS’는 그나마 좀 낫다.‘Indigo’나 ‘RAISON’정도가 되면 국적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ESSE’만 해도 ‘lights’ ‘field’ ‘one1’…. 다른 건 모양으로 구분한다지만 ESSE는 색깔까지 비슷하니, 자꾸 눈이 침침해지는 노인에겐 난감할 수밖에.

“담뱃갑마다 적어놓을 수도 없고, 아무리 외우려고 해도 당최 눈에 안 들어오니….” 길게 늘어지는 담배가게 할머니의 푸념이 오래 귓전을 맴돈다. 거북선, 솔, 도라지, 은하수…. 우리말로 부르던 담배이름을 그리워하는 건 할머니와 나뿐일까? 흡연이 죄가 된 시대, 담배를 끊지 못해 눈치보며 사는 처지에 그런 걸 따지는 것도 주제넘은 짓일까?

이호준 인터넷부장 sagang@seoul.co.kr

2005-05-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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