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호박구덩이/심재억 문화부 차장

[길섶에서] 호박구덩이/심재억 문화부 차장

입력 2005-04-08 00:00
수정 2005-04-08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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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 모든 생산의 시작이 구덩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길어질 얘기라서 오늘은 호박 구덩이만 말하는 게 낫겠습니다. 농사를 짓고 살지 않아도 주말농장에 호박 한번 심어보겠다고 작정하신 분이라면 지금쯤 호박구덩이를 파고 밑거름 듬뿍 해야 실한 호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호박 이게 넉넉한 생김처럼 거름발깨나 따지거든요.

꽝꽝 언 대지가 녹아 흙이 고슬고슬 새 숨을 쉴 이 즈음, 텃밭 가장자리에 구덩이를 팝니다. 큰 호박 하나 족히 들어갈 만큼 판 구덩이에는 겨우내 뒷간에서 삭힌 인분을 퍼붓지요. 요새야 똥얘기도 금기인 세상이지만 옛날이야 숫제 똥판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구린내쯤이야 나는 줄도 모르고 살았지요. 농투성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원래 사람은 그렇게 적응하며 사는 동물이니까요.

호박씨가 싹을 틔우고, 넌출넌출 넝쿨이 자라 허기진 사람들 마음의 배를 불립니다. 그게 다 ‘똥발’이라는 걸 농사 지어본 사람들은 다 알지요. 그래서 땅은 정직하다고들 말하지만, 호박 구덩이는커녕 천지간에 몸 하나 누일 땅이 없어 그런 정직마저도 겪을 일이 없으니 허튼 생각으로 땅투기라도 해보고 싶은 날입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5-04-08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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