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보다 종이가 귀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담배와 종이가 무슨 상관이냐고요? 그땐 시골 사람들 거개가 명함 반쪽만 하게 자른 종이에 침을 발라 만 막초를 태웠거든요. 이를테면 부스러기 살담배인데, 그걸 ‘봉초’라고 불렀습니다. 이름이야 풍년초니, 수연이니 했지만 썰거리를 봉지에 채운 ‘봉초’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습니다. 미끈한 궐련을 아무나 피울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일도 있었나 봅니다. 초등학교 2∼3학년 무렵이었을까요. 유난히 졸음이 많은 선생님은 국어시간만 되면 차례대로 책을 읽히곤 하셨는데, 한 곳에서 읽는 소리가 뚝 끊겼습니다. 꾸벅꾸벅 졸던 선생님이 잠긴 목소리로 “왜 책 안 읽느냐.”고 묻자 얼굴이 달아오른 그 애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울 아부지가 책을 찢어 담배를 말아피워서….”라며 울먹였습니다.
일에 지친 농부들, 풀섶에 주저앉아 쌈지에서 봉초를 말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양 볼이 발씸거리도록 빨아대던 그 담배의 효용은 잘 모르지만 사람들 담배인심은 후해 “한대 피우고 하자.”면 “암만 그래도 내 속으로 들어가는 건 이 담배뿐”이라며 마주앉아 봉초 한 대로 ‘담배동서’가 되곤 했던 그 시절.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그래서 이런 일도 있었나 봅니다. 초등학교 2∼3학년 무렵이었을까요. 유난히 졸음이 많은 선생님은 국어시간만 되면 차례대로 책을 읽히곤 하셨는데, 한 곳에서 읽는 소리가 뚝 끊겼습니다. 꾸벅꾸벅 졸던 선생님이 잠긴 목소리로 “왜 책 안 읽느냐.”고 묻자 얼굴이 달아오른 그 애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울 아부지가 책을 찢어 담배를 말아피워서….”라며 울먹였습니다.
일에 지친 농부들, 풀섶에 주저앉아 쌈지에서 봉초를 말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양 볼이 발씸거리도록 빨아대던 그 담배의 효용은 잘 모르지만 사람들 담배인심은 후해 “한대 피우고 하자.”면 “암만 그래도 내 속으로 들어가는 건 이 담배뿐”이라며 마주앉아 봉초 한 대로 ‘담배동서’가 되곤 했던 그 시절.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4-12-31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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