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직장 왕따/이기동 논설위원

[씨줄날줄] 직장 왕따/이기동 논설위원

입력 2004-10-11 00:00
수정 2004-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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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 예루살렘에 취재차 들렀을 때 일이다.유학 중인 우리 기독교 성직자의 집에 초대받아 갔는데 모인 이들이 다른 교파 성직자의 험담만 해대 저녁 내내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하긴 둘 모이면 당파 만들고 셋 모이면 정당 만든다는 이야기가 근거 없이 나왔을까.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특별히 파당 만들기 좋아하는 민족 아니냐고 자학할 필요는 없다.

어딜 가나 핵심그룹과 주변그룹이 있고,거기에 출신 지역,학교별로 소그룹이 따로 움직이는 게 우리 인간사다.대부분은 핵심과 주변,두 그룹중 한쪽에 속하지만 간혹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도 있다.핵심그룹에 속해 ‘단맛’만 봐 온 이들은 변방의 애환을 모른다.더구나 무소속 ‘왕따’들이 받는 고초는 당해 보지 않은 이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직장 동료를 악질적으로 따돌림한 대기업 직원에게 처음으로 징역형이 선고됐다.동료를 따돌림시키는 이메일을 나머지 동료 50여명에게 보내는 등 피해자로 하여금 정상적인 업무를 못하도록 한 죄다.피해자는 회사비품도 마음대로 못 써볼 정도로 심한 왕따를 당하다 졸도로 쓰러지기도 했다고 한다.피해자가 직장 상사가 컴퓨터 부품을 터무니없이 비싼 값으로 구입한다는 의혹을 회사 감사팀에 제보한 뒤 이같은 따돌림을 당했다니 그 대기업의 인사관리 수준도 한심하다.

직장 왕따 중 가장 악성은 핵심그룹이 가하는 조직적 따돌림이다.엉뚱한 부서로 발령 내거나 아예 업무를 빼앗기도 한다.참여정부 출범 직후 한 부서의 국장급 고위관리가 당한 따돌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정권이 바뀌면 전(前) 정권 때 낙하산을 탄 고위직들은 보따리를 싸는 게 관행이지만,이 관리는 눈치없이 자리를 뭉갰다.그에겐 주요회의 참석 통지도 안 갔고,심지어는 결재서류도 건너뛰었다.부하 직원들까지 식사때 그를 피하는 수모가 계속됐다.구명 여론이 일부 있었지만,그는 결국 물러났다.

승진에서 밀리고 후배한테 굴욕적인 질책을 당하는 비애감은 당사자 아니고는 모른다.무엇보다 기업들의 인사관리가 더 투명해지고 직장 노조,사회단체들이 이들의 권리보호에 적극 나서주는 게 중요하다.여기에 이번 판결처럼 법의 안전판이 바람막이가 되어준다면 직장 왕따들의 삶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2004-10-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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