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몸값 불리기와 사람됨 불리기/김민숙 소설가

[열린세상] 몸값 불리기와 사람됨 불리기/김민숙 소설가

입력 2004-09-18 00:00
수정 2004-09-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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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장에 나갔더니 푸른 눈의 젊고 아름다운 백인 여자 다섯 명이 피켓을 들고 가게마다 들러 남자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흔하지 않은 풍경이라 지켜보니 단란주점 선전이었다.얼굴 모습으로 보아서는 러시아 여인인 듯싶었다.오늘 밤에 그 주점에 오면 그 푸른 눈의 백인여자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노골적인 견본 전시였다.아마 우리나라 여자였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시골 구석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를 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퇴비를 사러 계분 사료공장에 가면 거무스레한 파키스탄 젊은이를 만날 수 있고,벽돌공장에도 동남아 젊은이들이 일하고 있다.이제 우리 젊은이들은 대부분 힘들고 어렵고 불편한 것은 참으려 하지 않는다.

한여름 어느 아파트 앞 중국집에 들어갔더니,주인 혼자서 전화주문을 받고 있었다.에어컨이 고장나 실내가 덥다면서 미안해 하던 주인은 주방에 우리가 주문한 음식을 시켜놓고 자신이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나갔다.배달하던 젊은이가 새로 에어컨이 설치될 사흘을 못 참아서 너무 덥다며 그날로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우리는 모두 할 말을 잃었다.신문마다 취업난이라는 기사가 눈에 띈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어떻게 이 취업난을 뚫고 직장을 잡을 수 있을지에 관한 기사도 자주 보인다.그런데 직장을 잡는다고 문제가 끝나는 건 아닌 모양이다.작년부터 비정규직 문제가 표면으로 떠올랐고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건지 ‘비정규직보호 입법안’을 내놓았다.

그런 한편에서 20대 상장회사의 평균 급여액이 372만원이라는 기사도 있고,있는 자리에서 더 잘 나가기 위한 ‘몸값 불리기’ 기사도 있다.이 기사가 직장인의 자기계발을 돕기 위한 좋은 뜻인 것은 알겠지만,사람을 돈으로만 재는 듯한 ‘몸값 불리기’,‘몸값 올리기’라는 제목 자체에 혐오감을 느낀다면 너무 신경질적인 반응일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어느 광고 문안처럼 모두 부자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뛰어 왔다.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취업은 바늘구멍이고,직업 가진 사람도 언제 잘릴지 전전긍긍하는 자리에 와 있다.이런 문제들이 정말 경기부양만으로 해결될까?

지난여름,선배의 아들이 그 어렵다는 방송국 시험에 합격해서 함께 기뻐했다.그런데 대학교수인 선배가 아들의 첫 월급을 보고 놀라워했다.몇년 지나면 자신의 연봉보다 높을 것 같다는 것이다.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 석연치 않은 기분이었다.아마 직장이나 직업에 따라 월급여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보다 더 심할 것이다.내친김에 알아보니 지난해 상용직 노동자 월평균 급여는 153만원이었고,그래서 최저임금연대가 이번 9월부터 일용직 노동자나 외국인 노동자의 최저임금으로 그 절반인 76만 6000원을 요구했다고 한다.그전까지의 최저임금은 56만 7000원(시급 2510원)이었다.

사회 시스템이나 경제에 문외한이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경기가 아무리 좋아져도 이런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우리 사회 전체의 생각이 바뀌고,급여에 대한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일하기 위해 자신들의 희생을 각오하고 나섰다는 반가운 소식이 일부에서 들리긴 하지만,사회 구성원 전체가 좀더 획기적인 희생과 자기 변혁을 이루지 않고는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길이 없을 듯싶다.잘나가는 회사의 좋은 직종에 주는 그 엄청난 혜택을,어렵고 고된 일쪽으로 조금만 덜어주자.더럽고 힘든 일들을 바탕으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그 일에 상응하는 대우를 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하면,이미 돈이 신앙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너무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일까?



김민숙 소설가
2004-09-1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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