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놋그릇/심재억 문화부차장

[길섶에서] 놋그릇/심재억 문화부차장

입력 2004-09-14 00:00
수정 2004-09-1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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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앞둔 지금쯤이면 큰며느리였던 어머니는 아예 날을 잡아 놋그릇을 닦곤 하셨다.광 속에서 제기(祭器)광주리를 꺼내고,찬장 시렁에 얹힌 그릇과 놋요강,징을 닮은 방짜유기 세숫대야까지 더해 마당 한 쪽이 놋그릇으로 그득했다.“이렇게 닦아 차례상을 차려야 조상들이 편히 운감(殞感)을 하지.나중에 나 죽고 더라도 니 각시한테 꼭 이게 시켜야 써.”

말이 그릇 닦는 일이지 놋그릇의 묵은 때를 벗겨내기란 ‘어깻죽지에 서리 맞는 일’에 버금했다.검은 흙기와를 부숴 낸 고운 가루를 물에 적신 짚수세미에 묻혀 맨지르한 그릇을 문지르는 일은 보기보다 힘들었다.한참 문지르다 보면 손아귀 힘이 풀려 미끈 빠져나간 그릇이 부딪치며 깡깡 쇳소리를 내곤 했다.꼬박 한나절을 닦아 새암물에 씻은 뒤 깨끗한 광목 천으로 매조지해 쌓아 놓은 놋그릇이 가을 햇빛을 받아 싱싱하게 반짝거렸다.

그 반짝임이 또한 내 핏속에 살아있음을 나중에 알았다.한 날,인사동 골동품전의 유리진열장에 부장품인 듯한 놋그릇이 갇혀 있었다.더는 뜨거운 밥이 담기지 않고,그래서 닦을 일도 없을 그 놋그릇을 어디선가 본듯 해 나는 한참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다.

심재억 문화부차장 jeshim@seoul.co.kr

2004-09-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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