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에] 반야병다(般若餠茶)의 향기/여연스님 대흥사 일지암 주지

[토요일 아침에] 반야병다(般若餠茶)의 향기/여연스님 대흥사 일지암 주지

입력 2004-07-10 00:00
수정 200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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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천둥번개가 섞어치며 가느다랗게 숨을 쉬고 있는 문풍지를 흔들어댄다.비를 맞은 처마끝 풍경은 자연의 거대한 오케스트라에 밀려 숨조차 내쉬고 있지 않다.

비가 그친 새벽녘 3평 남짓한 일지암 연못은 마치 한 마리 굶주린 용이 하늘로 승천한 듯 거친 폭포로 변했다.물을 잔뜩 머금은 구름이 바로 곁에 와있다.매일 아침 만나는 아랫녘 대흥사 공양간의 실낱같은 아침연기도 없다.

비를 맞으며 짚으로 엮어만든 초당으로 향한다.어젯밤 잠들기 전에 밀어 넣었던 장작들의 불씨들이 남아있다.불 쑤시개로 뒤엎은 뒤 까실까실한 마른 장작 3∼4개를 다시 밀어 넣었다.

숨어있던 불씨들이 기지개를 켠다.대나무로 엮은 초당의 문을 연다.생의 머어먼 뒤안길에서부터 밀려오는 아련한 향기가 물씬 풍겨나온다.곡우절 참새의 혀처럼 가늘고 여린 연두색 싹들을 모아 솥에서 데쳐내고 둥그렇게 찍어내 말리고 있는 발효차인 ‘반야병다’(般若餠茶)가 안으로 안으로 익어가며 내는 반야의 향기가 나를 알 수 없는 희열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일지암에서 만들고 있는 한국전래의 떡차인 ‘반야병다’는 푸른 진갈색에 둥글거나 모나거나 하게 찍어낸 것들이다.그윽하고 깊은 맛을 내기위해 메주를 띄우는 것처럼 발효를 시켜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고유의 발효차인 ‘반야병다’인 것이다.

그 맛은 참으로 신묘해 중국의 명차라 불리는 보이차보다 뛰어나다.우리차는 원래 발효차와 반 발효차가 함께 제조됐었다.그 전통이 겨우 몇몇 소수의 장인들에게만 전래되어 왔다.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전통차인 발효차를 제대로 제조해내는 다원들이 많이 늘었다.

초의스님의 제자인 범해각안스님은 발효차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곡우절 맑은날/노오란 싹은/아직 잎이 피지 않았는데/솥에서 데쳐내어 밀실에서 말리네/모나거나 둥근차 찍어내고/죽순 껍질로 안을 말아서 싸네”라며 그 제조 과정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우리전통차를 사랑하는 아주 작은 사람들이 우리차의 맥들을 이어내고 있다.참으로 수고스럽고 자랑스러운 일들이다.그런 우리 차인들에게 아주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최근 우리차의 세계화를 위해 열리는 행사가 있어서 많은 차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농림부를 비롯한 관계기관과 한국차인연합회 명원문화재단 등 한국을 대표하는 차단체들이 함께 모여 ‘우리차 품평’를 개최하는 것이다.

중국은 50년전부터,일본은 30년전부터 자국차의 세계화와 품질경쟁력을 위해 시행해왔던 것이다.어느 통계를 보니 웰빙문화의 정착과 함께 한국의 차 인구가 700만명에 육박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우리차는 이제 대중화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고유의 브랜드를 갖출 우리차에 대한 기준이 없어 생산자나 소비자가 함께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차 품평회는 우리차와 우리 차 문화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격상시킬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여연스님 대흥사 일지암 주지˝
2004-07-1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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