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칼럼] 高대행, 행동반경 넓혀라

[이경형칼럼] 高대행, 행동반경 넓혀라

입력 2004-03-18 00:00
수정 2004-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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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형  편집제작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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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이 유동적인 가운데 고건(高建)대통령 권한대행의 직무 행사 범위를 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헌법학자들은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에 관해 “긴급 비상사태가 아니라면,‘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이 비록 탄핵 소추를 받아 직무가 정지되었다고 하나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에 따라서는 권한 복귀가 언제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국정 현안을 놓고 볼 때, ‘관리자로서 책무’의 한계를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대행의 직무 범위를 재는 잣대는 그에게 부과된 임무를 꼼꼼히 생각해보면 어림잡을 수 있다.

첫째는 국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둘째,탄핵 소추에서 오는 정치·경제·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며 셋째,국회의원 총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는 일일 것이다.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는 무엇보다 행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민생을 다독거리며 외교·안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권한 행사의 범위와 관련하여 논란이 있는 문제는 고위 공무원 및 공기업 사장 등 인사 문제와 국회를 통과한 사면법의 재의 요구 여부 등이다.이 가운데 1∼3급 공무원의 승진·전보 인사와 일부 직제 개편에 의해 공석이 된 차관급 인사는 행정 공백을 메운다는 의미에서 시행해야 할 것이다.다만 참여정부 국정의 연속성을 해칠 수 있는 내각 개편 등은 ‘선량한 관리자의 책무’범위를 벗어난다고 볼 수 있다.

국회가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한 사면법에 대해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이 법이 권력분립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하면 거부권을 통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일각에선 고 대행이 ‘너무 나가지 않게’ 대행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를 정해주는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고 대행이 누구인가.약관에 전남지사·대통령 정무비서관을 거쳐 교통·농수산·내무 등 3개 부처 장관을 역임했다.거기에 관선·민선 서울시장을 두 차례나 했고,국무총리직도 두 번이나 하고 있는 ‘행정의 달인’이다.

그가 헌정사의 위기와 변혁의 고비를 헤쳐나온 것도 따지고 보면 주어진 권한을 더도,덜도 쓰지 않을 뿐 아니라,중요한 결정을 좀체 내리지 않는 타고난 신중한 처신 때문일 것이다.그의 단점은 오히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적극적인 행정을 펴지 않을까 우려되는 점이다.

촛불시위에 관한 지시만 해도 그렇다.고 대행은 “불법집회·시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라.”고 지시한 반면,행자부 장관은 “해가 진 뒤 촛불행사는 불법이지만 문화 행사로 치르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고 했으며,하루 전날 경찰청장은 “탄핵 규탄 촛불집회는 불법이므로 해산시키겠다.”고 했다.

국민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가.‘무해무득한 원론적인 지시’는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눈치보기 행정이 되기 쉽다.

고 대행은 대통령 비서실 수석·보좌관회의는 종전대로 시행하되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회의 내용을 보고토록 하고,노 대통령에게도 비공식 보고를 하도록 교통정리했다고 한다.그의 치밀하고도 사려깊은 행정 수완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앞으로 고 대행이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그것은 자신의 의사보다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 더 실린 조치로 보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지금 고 대행에게 요청되는 것은 행동반경을 과감히 넓히고,좀더 분명한 목소리를 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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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제작 이사 khlee@˝
2004-03-18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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