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창과 방패/우득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창과 방패/우득정 논설위원

입력 2004-03-16 00:00
수정 2004-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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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차를 몰고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거나 마주 보고 달리다 누가 마지막까지 견디다 밖으로 뛰어내리느냐는 ‘치킨 게임’이 유행한 적이 있다.담력 테스트다.겁에 질려 먼저 뛰어내리는 사람은 겁쟁이,즉 치킨이 된다.하지만 서로 치킨이 되지 않으려고 끝까지 버티다 보면 낭떠러지로 추락하거나 차끼리 충돌해 죽음이라는 파국에 이르게 된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이러한 게임 이론은 흔히 국가 사이에서도 적용된다.북한이 즐겨 구사하는 ‘벼랑끝 전술’도 따지고 보면 치킨 게임의 성격이 짙다.위험도가 높은 만큼 돌아오는 파이도 크다고 할지 모르지만 멀쩡한 정신으로는 시도할 바가 못된다.

탄핵정국으로 일컬어지는 지금의 정치 상황을 치킨 게임과 다를 바 없다고 보는 정치학자들도 있다.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는 막가파식으로 몰아붙이는 야권과 ‘배째라’식으로 내 갈 길만 고수한 노무현 대통령과 여권의 공동책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이제 최종 판단의 몫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덕분에 요즘 인터넷 최고 인기 검색어가 ‘헌법재판소’와 ‘헌법 재판관’이다.하루 1000건 남짓했던 헌재 홈페이지 접속 건수가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이후에는 무려 7만여건이나 된다고 한다.탄핵안 가결 직후에는 3만여명이 동시 접속하면서 심각한 접속 지연사태까지 발생했다는 말도 있다.

다음으로 각광받는 인물이 탄핵심판에서 검사 역할에 해당하는 탄핵소추위원을 맡게 된 김기춘(한나라당) 국회 법사위원장과 노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참여정부 첫해 ‘왕수석’이라는 별칭과 함께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문재인 전 민정수석.양측은 양보와 타협이 있을 수 없는 역사적인 대회전을 펼치게 된다.언론에서는 동향(경남 거제),동문(경남고)이면서도 김 위원장은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역임한 최고의 엘리트 검사 출신,문 전 수석은 반유신운동 투옥 전력에 재조 경력이 전무한 인권변호사 출신인 점을 대비해 ‘창과 방패’의 대결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비자에 나오는 고사 ‘모순(矛盾)’에서도 창이 날카로운지,방패가 단단한지 확인되지 않는다.다만 이번에 지는 측은 치킨이 아니라 파멸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2004-03-16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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