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탐구 즐긴 집념의 소년… 글로벌 삼성 ‘제2의 창업’ 이루다

무한탐구 즐긴 집념의 소년… 글로벌 삼성 ‘제2의 창업’ 이루다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20-10-25 22:32
수정 2020-10-26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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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건희 회장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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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어린 시절 모습.  서울신문 DB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어린 시절 모습.
서울신문 DB
국내 재계에서 가장 극적인 성공신화를 쓴 총수, 삼성을 글로벌 정보기술(IT) 최강자로 키워 낸 경영인, 무노조 경영을 견지한 자본가, 그리고 은둔의 황제.

이 같은 이름으로 수식돼 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미래를 꿰뚫는 혁신의 리더십, 과감한 결단으로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키우며 우리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아버지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서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은 그는 수많은 기로에서 발휘한 승부사적 결단, 품질에 대한 집념으로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TV 등에서 글로벌 1위를 거머쥐며 삼성을 ‘제2의 창업’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외로운 유년기

바쁜 부모님·日유학으로 외로움에 익숙
자동차·레슬링 등 ‘마니아적 기질’ 키워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박두을씨 사이에서 3남 5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제일비료 회장을 지낸 맹희씨와 고인이 된 창희씨 등 두 명의 형이 있어 아들 중에서는 막내다. 여자 형제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씨 등 네 명의 누나가 있으며 여동생으로 신세계그룹 회장인 명희씨가 있다. 호암이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 사업으로 바쁜 부모를 대신해 경남 의령의 할머니댁에서 세 살 때까지 자랐다. 국내에서 초등학교를 다섯 차례 옮겨 다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엄명에 따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학교 때 귀국해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한 뒤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6년 동양방송에 이사로 입사해 법무·내무부 장관을 지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결혼했다. 결혼 후 삼성 비서실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삼성그룹의 큰 그림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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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해외사업추진위원회에 참석한 이 회장(왼쪽 두 번째)이 이병철(첫 번째) 삼성 창업주 곁에서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삼성 제공
1978년 해외사업추진위원회에 참석한 이 회장(왼쪽 두 번째)이 이병철(첫 번째) 삼성 창업주 곁에서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삼성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