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서울] (3)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하)

[오디세이 서울] (3)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하)

이세영 기자
입력 2008-08-06 00:00
수정 2008-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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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초라한 호남선 빠져 나오면 눈 앞에 거대한 경부선이…서울 관문에 드리운 ‘지역차별의 그림자’

1980년대 낡고 더러운 호남선 터미널의 동측 출구를 빠져 나오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광경이 비닐천막 아래 길게 줄을 선 택시 승객들이었다. 오랜 차별과 가난에 찌든 그들의 표정은 어딘지 주눅들거나 고단해 보였고, 거친 노동으로 단련된 투박한 두 손에는 고향집에서 들려줬음직한 묵직한 보따리가 걸려 있었다. 가끔 초등학교 교사처럼 말쑥하게 차려 입은 중년신사가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 그들 곁을 맴돌았다. 그러나 정작 절실한 것은 ‘현세의 집 한 칸’이지 ‘피안의 구중궁궐’이 아님을 영등포·구로·봉천 등으로 압축되는 그들의 행선지가 말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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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짜리 터미널의 서측 골목길에는 대폿집이 즐비했다. 전주나 군산, 해남, 영암 같은 지방도시 이름들로 옥호(屋號)를 삼은 선술집들이었다.

차표를 끊고 서둘러 독한 술을 들이켜는 사내들 곁엔 비누·치약세트나 종합과자선물 따위의 조악한 꾸러미가 놓여 있기 마련이었다. 좁고 초라한 식당 안은 억눌렀던 변의(便意)를 해갈하듯 술기운을 빌려 거칠게 내뱉는 남도 방언으로 떠들썩했으나, 그 소란함에는 저릿하고 무거운 시대의 회한과 우울이 섞여 있었다.

●‘이등 시민´ 열패감 안겨준 호남터미널

한 시절의 음영이 짙게 드리운 옛 호남선 터미널은 경부선 터미널에 앞서 1978년 3월 완공됐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하1층·지상3층의 평슬래브 건물이었다. 이 무미건조한 구조물의 탄생에는 서울시의 졸속행정이 한 몫을 담당했다.

당초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의 5만평 부지 가운데 3만평은 고속터미널로,2만평은 시외버스터미널로 사용한다는 것이 구자춘 당시 서울시장의 복안이었다. 그러나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를 한 곳에 집중시키자 극심한 교통혼잡이 빚어졌고, 서울시는 서둘러 시외버스터미널을 서초동으로 옮기는 비상조치를 단행한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사용하던 2만평 부지를 인수한 것은 광주 출신으로 신흥재벌 율산의 창업자인 신선호였다. 신선호는 이 자리에 350억원을 들여 20층 규모의 대형 터미널 건물을 세울 작정이었지만 78년부터 악화된 자금난으로 대합실과 정비고만 갖춘 건물을 졸속으로 지어올린 것이 옛 호남선 터미널이었다.

81년 뉴욕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을 모방한 경부선 터미널이 완공되자 볼품없는 호남선 터미널은 영·호남 지역차별을 상징적으로 웅변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1980년 ‘피의 기억’를 간직한 호남인들에게 서울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다가오는 공간적 배제의 경험은 그들 가슴에 ‘이등 시민’이란 열패감을 심어 놓기에 충분했다.

●2000년 센터럴시티로 재탄생

옛 호남선 터미널이 첨단 하이테크 건축물로 재탄생한 것은 2000년. 천정부지로 치솟은 강남 지가 덕에 재기에 성공한 율산 가문이 낡은 건물을 헐어낸 자리에 터미널과 백화점, 컨벤션센터, 호텔 등을 갖춘 복합건축물 ‘센트럴시티’를 완공한 것이다. 호남선 승객의 의식 안에 깊숙이 각인된 차별과 배제의 격리감은 이것으로 치유된 것일까. 강남의 옛 호남선 터미널을 찾던 승객들 상당수는 그 사이 부천과 성남, 안양 등 외곽도시 터미널의 이용자로 밀려난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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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2008-08-0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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